21년 미제 사건 이었던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검거 관련 공식 브리핑에서 공개된 피의자 중 1명인 이정학씨가 검거되는 장면/사진=SBS |
2022년 8월 27일 21년째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던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사건' 용의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법원은 "도주 염려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이들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구속된 지 3일 만에 열린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승만과 이정학, 고등학교 동창이 모의한 범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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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그날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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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국민은행 지하주차장에 검은 복면을 쓴 괴한 2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은행 관계자 3명이 현금 가방을 내려 옮기는 순간을 노려 권총으로 협박했고 3억원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겨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저항했던 45세 남성 은행 출납과장이 권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두 자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사상 초유의 대낮에 벌어진 은행 강도 살인사건이었지만 도주한 범인들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은행 내부와 달리 지하주차장에는 CCTV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저항했던 45세 남성 은행 출납과장이 권총에 맞아 숨졌다. 그는 두 자녀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사상 초유의 대낮에 벌어진 은행 강도 살인사건이었지만 도주한 범인들을 잡기는 쉽지 않았다. 은행 내부와 달리 지하주차장에는 CCTV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범인들이 타고 도주했던 검은색 그랜저가 한 상가건물 지하주차장에서 발견됐지만, 차량 조회 결과 이 차량은 도난 신고된 상태였다. 지문과 DNA 감식 결과에서도 원래 차주의 것만 검출됐다. 범인들은 그랜저를 버리고 다른 차량을 타고 도주했다.
2001년 12월 21일 오전 10시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국민은행 지하주차장에 검은 복면을 쓴 괴한 2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은행 관계자 3명이 현금 가방을 내려 옮기는 순간을 노려 권총으로 협박했고 3억원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겨 달아났다./사진=SBS |
남은 건 은행 출납과장이 맞았던 총알 분석이었다. 그런데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경찰 또는 군 간부가 소지하는 38구경 권총에 쓰이는 실탄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군에서는 총기 분실 사고가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들은 38구경 권총을 어떻게 구한걸까. 실마리는 약 두 달 전 사건과 연관된다. 은행 강도 살인사건 발생 약 두 달 전인 2001년 10월 15일 대전 대덕구 비래동의 한 골목길에서 경찰관 1명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범인들은 10월 14일 오후 9시 30분쯤 시동이 걸린 채 주차돼 있던 흰색 쏘나타를 훔쳤다. 훔친 차량을 운전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이들은 2시간 30분 후 야간 순찰 중이던 경찰관을 들이받았다. 그런 뒤 쓰러진 경찰관에게서 공포탄 1발과 실탄 4발이 장전된 권총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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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로 재수사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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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충남경찰청에 수사본부를 설치해 목격자와 전과자 등 5321명과 차량 9276대, 통신 자료 18만2378건, 탐문 2만9269개소 등에 대한 수사를 벌였으나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이듬해인 2002년 8월 제보를 입수한 경찰은 용의자 3명을 검거했다. 하지만 영장실질심사에서 경찰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었다는 주장 등이 제기되면서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모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게됐다.
시간이 흘러 2011년 대전경찰청에 중요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생겼다. 둔산경찰서에서 수사 중이던 은행 강도 살인사건이 이곳으로 이첩됐다. 이 사건은 2016년 공소시효가 만료될 예정이었는데,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태완이법'이 2015년 7월 시행되면서 전담수사팀은 계속 수사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로 신상 정보가 공개된 이승만(왼쪽)과 이정학(오른쪽)/사진=대전경찰청 |
2017년 본격적으로 재수사가 이뤄졌다. 수사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마스크, 손수건 등 사건 당시 현장 유류물 DNA 분석을 재차 의뢰했고, 그 결과 신원 미상인 남성 DNA가 발견됐다. 이 DNA는 2015년 충북 소재 불법 게임장 현장 유류물 DNA와 일치했다. 이에 경찰은 게임장에 출입한 종업원, 손님 등 1만5000여명에 대한 DNA를 대조하는 등 수사를 벌였다.
2022년 3월 대전경찰청은 이정학을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이정학이 불법 게임장에 버린 담배꽁초에서 검출된 DNA가 21년 전 은행 강도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 것. 경찰은 같은해 8월 대전에서 이정학을 검거했다.
이정학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승만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을 확보해 강원도 정선에 있던 이승만을 긴급체포했다. 2001년 당시 기술력으로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으나 과학 수사 기법 발전으로 DNA가 발견돼 사건이 해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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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무기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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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승만(왼쪽)과 이정학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사진=뉴스1 |
이정학은 혐의를 인정했고, 이승만은 혐의를 부인했다. 당시 이승만을 조사했던 형사는 "세 번째 조사하는 날 (이승만이 조서에) 서명하고 날인하고 일어나서 갈 때 '당신 양아치다'라고 한 마디했다"며 "그런데 이승만 얼굴이 이제까지 못 본 표정으로 바뀌더라. 그러면서 '형사님, 옆에 형사랑 둘이 친구지간이다. 둘이서 금덩어리를 같이 훔치기로 했고 훔친 걸 절대 얘기 안 하기로 했는데 그런데 그걸 얘기한 놈이 양아치냐, 얘기 안 한 내가 양아치냐'고 묻더라"고 했다.
이승만이 자백을 한 셈인데, 경찰은 이때가 대질조사를 할 타이밍이라고 판단해 분리 수감돼 있던 두 사람을 영상통화로 만나게 했다. 이승만은 "다 얘기했나"라고 물었고, 이정학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후 이승만은 모든 걸 자백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정학의 밀고로 자신이 체포됐다는 걸 알게 된 이승만은 "총을 쏜 건 내가 아니라 이정학"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정학은 "권총은 이승만이 쐈다"고 반박했다. 진실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이승만이 주도적으로 범행을 추진하고 살인을 저질렀다고 판단해 이승만에게 무기징역을, 이정학에게는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정학이 병역을 마치지 않아 총기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반면, 이승만은 수색대대에서 군 복무를 마쳐 상대적으로 총기 사용에 익숙하며 실탄 사격 경험도 있어 이승만이 권총을 쐈다고 판단했다.
특히 양손으로 권총을 감싸 피해자를 겨눴다는 목격자 진술과 탄환이 피해자 몸통 옆과 허벅지 등을 관통한 점을 고려하면 정확한 조준을 위해서는 상당한 권총 사용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2심에서도 두 사람 모두 자신이 권총을 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2심 재판부 역시 여러 증거와 상황을 고려해 권총을 쏜 사람은 이승만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1심과 달리 두 사람 모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형법상 강도살인의 법정형은 사형과 무기징역 뿐이고, 감경 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징역 20년은 법이 정한 형량에 벗어난다고 판단한 것.
이들은 대법원 판단을 받기 위해 상고를 제기했고 이를 심리한 대법원 재판부는 이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결국 두 사람은 최종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혜주 기자 heyjud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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