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레미콘 규제의 역설②업계 현장에서 본 왜곡의 현실
레미콘을 실어나르는 믹서트럭./사진제공=시멘트업계 |
"언제 파업으로 멈춰 세울지 모르니까요. 이제는 믹서트럭 증차가 필요합니다."
건설 현장 앞에선 흡사 '바나나 우유통'을 짊어진 듯한 모습의 커다란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콘크리트(레미콘, Ready-Mixed Concrete) 믹서트럭'이라고 불리는 이 트럭은 통을 굴려 레미콘을 섞는 동시에 현장에 실어나르는 역할을 한다. 레미콘은 만든지 90분 내에 건설현장에 도착하지 않으면 굳어버려 쓸 수 없다.
이처럼 건설 현장엔 없어선 안 될 필수품임에도 2009년 이후 16년째 영업용 믹서트럭의 증차는 번번이 정부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믹서트럭은 2009년부터 시행된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라 신규 등록 제한 품목으로 분류됐는데, 믹서트럭의 수를 늘리려면 국토교통부 산하 건설기계 수급조절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건설경기 악화 등을 이유로 지난해 기준 믹서트럭 수는 2만6430대로 16년 째 같은 수준을 이어오고 있다.
믹서트럭은 크게 영업용인 지입차(레미콘 제조사 계약 차량)와 자가용(레미콘 제조사 소유 차량), 용차(일일 계약 차량) 등으로 나뉜다. 레미콘 기업은 지입차와 자가용을 기반으로 운용하되 필요 시 용차와 운송계약을 맺어 추가 운송수단을 확보한다. 이 중 자가용은 건설기계 수급조절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법적으로는 레미콘 기업의 필요에 따라 증차가 가능하다. 하지만 1억6000만원에 달하는 믹서트럭 가격 자체도 대부분 중소 규모인 국내 레미콘 기업에겐 부담이다. 자가용 믹서트럭은 사실상 운송사업자들 대표단체인 전국레미콘운송총연합회(전운련) 등의 승인 없이는 마음대로 운영할 수도 없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레미콘 공장 1곳 당 보유한 믹서트럭 현황/그래픽=이지혜 |
믹서트럭 수요는 매년 늘었지만 공급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2009~2023년 레미콘 공장 수는 21.8%(893개→1088개) 증가했지만, 믹서트럭(자가용) 대수는 7.7%(2만959대→2만2577대) 증가에 그쳤다. 그러다보니 공장 한 곳 당 평균 믹서트럭 대수는 2009년 23.5대에서 2024년 20.9대로 오히려 11%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믹서트럭 수가 적절한 수준이라면 믹서트럭 중 용차의 사용량이 건설 호황기와 침체기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야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며 "용차의 사용량이 매년 일정 수준으로 유지됐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믹서트럭 수 자체가 부족한 구조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심지어 용차를 사용하는 것조차도 기존 운송사업자들의 허락을 맡아야 하는게 현장의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없다보니 2009년 이전부터 믹서트럭을 운영해온 사업자들의 입김이 너무 커져버린 게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레미콘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건 믹서트럭 뿐이다보니, 믹서트럭을 볼모삼아 운반비 인상을 요구하는 단체행동 앞에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실제 2022년 운송사업자들 대표단체인 전국레미콘운송총연합회(전운련)의 파업으로 수도권 등 주요 건설 현장의 레미콘 타설이 지연되기도 했다. 당시 운반비가 약 24.5% 인상되면서 파업은 이틀만에 종료됐다. 전운련은 전국 레미콘 차량 중 약 1만3000대 사업자들의 모임이다.
연도별 레미콘 거래가격 및 레미콘 운반단가 현황(수도권 기준)/그래픽=김지영 |
이는 레미콘 운반비가 매년 급등한 배경이기도 하다. 업계에 따르면 2009년 3만313원이던 레미콘 운반비는 올해 7만5730원으로 150% 늘었다. 같은 기간 레미콘 가격은 5만6200원에서 9만1400원으로 62.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운반비 세부항목 중 유일하게 물가 인상 영향을 받는 주유비도 레미콘 제조사가 지급한다"며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를 등에 업은 운송사업자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운반비 인상을 주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 탓에 각종 위법과 편법까지 판치게 됐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2018년에는 등록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불법으로 사업자로 등록한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 도입 이후엔 믹서트럭 번호판을 약 2000만원(건설 호황기때엔 최대 4000만원)에 사고 파는 불법 거래가 이뤄지거나, 2000만원 상당의 권리금 형식의 상조회비를 내야만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일부 사업장의 기형적인 관행도 문제로 꼽힌다.
믹서트럭 증차 제한으로 생긴 문제는 업계 내 갈등으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믹서트럭 시장에 신규 사업자가 진입할 수 없게 되면서 믹서트럭이 노후화되고 운전자도 고령화되면서 교통사고 우려도 커지고 있다. 2022년 기준 믹서트럭 운전자는 60~70대가 44.83%로 거의 절반에 가깝고 70대 이상 운전자도 6.11%에 달한다. 실제 지난해 12월 부산 금정구에서 60대 믹서트럭 운전자가 7중 추돌사고를 내는 등 믹서트럭 사고도 매년 이어지고 있다.
레미콘 업계에선 27일 예정된 건설기계 수급 조절위원회에서만큼은 믹서트럭에 대한 증차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더 나아가 현재 레미콘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제도는 지역별 건설수요, 교통 여건, 산업 구조 등이 크게 다른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규제하는 방식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수립·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지역의 건설경기 흐름에 맞춰 기종별 등록 허용 여부를 탄력적으로 조정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차현아 기자 chacha@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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