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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트럼프의 압박, ‘핵연료 동맹’으로 판을 뒤집자

조선일보 박인국 前 주유엔대사, 최종현학술원 초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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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축우라늄 시장을
러·중이 장악하고 있다
韓美에 모두 위험 요소

원전용 우라늄 농축과
글로벌 공급 컨소시엄으로
동맹을 격상켜야 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국산 핵연료 실험을 하고 있다./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국산 핵연료 실험을 하고 있다./한국원자력연구원


동맹 여부를 불문하고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이라는 이유로 주요국 지도자들을 꼼짝없이 줄 세우고 있는 트럼프의 위세가 가관이다. 이른바 ‘백악관 집무실에서 살아남기’에서 보여준 우크라이나·남아공·캐나다·EU 정상들의 고군분투는 국제정치의 피도 눈물도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임덕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데 더욱 집중할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요구했다는 ‘한미 동맹의 현대화’와 우리가 언급한 ‘미래형 포괄적 전략 동맹’의 접목 가능성을 주목한다. 지난 70년간 미국의 안전 보장에 의존한 한미 동맹을 다가올 70년간 보다 호혜적인 ‘첨단 과학기술 동맹’으로 전환시킬 계기가 마련된다면 역사에 남을 정상회담이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상회담 후속 협의 과정에서 ‘핵발전 연료인 농축 우라늄 생산과 글로벌 공급의 한미 공동 추진안’에 특별한 관심을 갖기를 촉구한다. 한미가 손잡고 원전용 우라늄 농축 및 공급 컨소시엄을 만든다면 양국의 자체 수요 충족은 물론이고, 글로벌 핵연료 시장에서 안정적이고 새로운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현재 전 세계 약 440기의 원자력발전소가 필요로 하는 핵연료(농축우라늄)의 44%를 러시아가 공급하고 있다. 중국은 15%를 차지하고 있다. 이 두 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원자로의 과반이 가동 중단되는 위기가 올 수 있다. 미국은 현재 가동 중인 94기의 원전에 필요한 농축우라늄의 약 23%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러시아에서 32%, 중국에서 5%를 수입하고 있다. 한미가 공히 러시아와 중국에 높은 의존성을 가지고 있다는 취약점을 노출하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주춤했으나 중국의 시장 점유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러·중의 농축우라늄 시장 장악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2~3년 분량의 핵연료를 비축하고 있지만 심각한 글로벌 위기는 언제든 닥쳐올 수 있다.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은 ‘원자력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며 원전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배로 늘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AI(인공지능) 수요의 폭발적 증가와 SMR(소형모듈원전)의 급속한 확산이 배경으로 분석된다. 94기의 원전을 운영하는 미국은 대부분의 농축우라늄을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미국 내 다국적 기업에 의존하고 있다. 미 의회는 지난해 5월 러시아산 농축우라늄 수입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자체 공급 대안 마련이 발등의 불이 된 상황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폭락한 농축우라늄 가격이 지난 5년간 3배 폭등했다. 이런 수급 환경의 격변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세계 5위의 원전 국가인 한국이 핵 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중 37% 이상을 장기적 공급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러시아와 중국에 의존한다는 것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위험 요소다. 5% 저농축 우라늄 연료봉은 핵무기 생산과 직접 상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라늄 농축 기술의 민감성 때문에 미국은 한국의 자체 생산을 봉쇄해 왔다. 2015년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으로 20% 이하의 우라늄 농축을 원칙적으로 허용했으나, 한미 원자력 고위급위원회를 통한 사전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족쇄 조항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어떤 진전도 없었다. 군사 목적으로는 어떤 농축 기술도 이전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1978년 채택된 미 핵비확산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5위의 원자력 강국이 이런 오해와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은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한미 간 원전용 우라늄 농축과 글로벌 공급 컨소시엄’은 첨단 과학에 기반한 순수 산업적 프로젝트라는 것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국 내 핵비확산그룹의 우려와 오해를 효과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 원자력 협정의 개정과 원자력 고위급 위원회의 활성화 방안이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의 유일한 우라늄 농축 시설 보유사인 센트루스(Centrus)가 한국수력원자력과 4세대 첨단 농축 우라늄 장기 구입 계약을 하고 공동 생산 협력을 위한 협력 방안도 모색한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공동 생산이나 글로벌 공급망 확보보다 적극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의 기술 잠재력을 가진 우리 기업의 과감한 참여가 필요하다. 이름 붙이자면 ‘핵연료 동맹’이다. 한국의 제조·마케팅,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그리고 금융, 미국의 원천 기술이 힘을 합해 한·미·일 3국 컨소시엄 형태로 추진한다면, 러시아와 중국이 장악한 세계 시장 판도를 뒤집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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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국 前 주유엔대사, 최종현학술원 초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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