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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과 ‘터널’의 이미지로 도시의 불안정성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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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은 작가가 개인전을 차린 서울 계동 뮤지엄헤드 건물 앞 수조 위에 설치된 김 작가의 신작 조형물 ‘타면 나타나는 굴’. 금속성의 매끈한 질감과 빛을 내뿜는 알루미늄 패널판에 외장 페인트로 칠한 분방한 색선들은 도시 곳곳을 옮겨 다니는 이동 행위가 사람들의 몸에 미치는 감각적 자극을 표상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김세은 작가가 개인전을 차린 서울 계동 뮤지엄헤드 건물 앞 수조 위에 설치된 김 작가의 신작 조형물 ‘타면 나타나는 굴’. 금속성의 매끈한 질감과 빛을 내뿜는 알루미늄 패널판에 외장 페인트로 칠한 분방한 색선들은 도시 곳곳을 옮겨 다니는 이동 행위가 사람들의 몸에 미치는 감각적 자극을 표상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통신매체와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속도가 확 빨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공간을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1960~70년대 이런 통찰을 내놓은 이가 프랑스의 급진적 사상가이자 도시문화학자 폴 비릴리오(1932~2018)였다. 속도에 대한 인문학적 범주로서 ‘질주학’(드로몰로지)의 영역을 개척한 그는 전송 기술, 매체 메커니즘을 통한 속도의 가속화가 결국 권력과 빌붙을 것이며, 사람들의 감각을 가상세계 위주의 시각으로만 한정시키면서 온전한 시공간을 배제시켜 감각의 기형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런 예언이 인터넷, 에스엔에스(SNS), 인공지능(AI) 등으로 실현된 요즘, 감각에 매달리는 시각예술가들은 어떤 대응책을 꺼낼 것인가.



지금 서울 계동 전시 공간 뮤지엄헤드에서 ‘타면 나타나는 굴’이란 제목으로 개인전(9월6일까지)을 열고 있는 김세은(36) 작가는 청년 세대의 기민한 해법을 보여준다. 속도가 도드라지게 투영되는 도시의 도로와 터널 따위 이동 공간들을 지목하고, 이 공간을 사람들이 지나면서 겪는 감각을 2차원 그림에 색과 형상으로 풀어내는 특유의 작법이다.



뮤지엄헤드의 1층 전시 공간 안쪽에 걸린 김세은 작가의 신작 회화 ‘뉴 액션’(부분). 노형석 기자

뮤지엄헤드의 1층 전시 공간 안쪽에 걸린 김세은 작가의 신작 회화 ‘뉴 액션’(부분). 노형석 기자


일반 가정집을 개조한 뮤지엄헤드 건물 앞 얕은 연못 수조 위에 설치된 신작 조형물 ‘타면 나타나는 굴’은 이런 작가의 화풍을 단적으로 대변하는 작품이다. 금속성의 매끈한 질감과 빛을 내뿜는 알루미늄 패널판에 외장 페인트로 칠한 분방한 색선들은 도시 곳곳을 도로와 차량으로 옮겨 다니는 이동 행위가 사람들의 몸에 미치는 감각적 자극을 표상한다. 전시 평론을 쓴 권혁규 뮤지엄헤드 기획자는 전시의 시작과 말미에 눈길을 주게 되는 이 작품을 두고 “(도시적) 장소의 경험을 평면으로 옮기고 이를 파편적으로 떼어내 입체로 확장한 작업”이라며 “마치 현재의 경험이 또다른 장소로 기입된 듯한 공간감을 만들어낸다”고 짚었다.



뮤지엄헤드의 김세은 개인전 전시장 일부. 안쪽 벽에 2채널 회화 영상이 흐르고 오른쪽 벽에는 신작 회화 ‘뉴 액션’과 ‘타면 나타나는 굴’이 내걸렸다. 노형석 기자

뮤지엄헤드의 김세은 개인전 전시장 일부. 안쪽 벽에 2채널 회화 영상이 흐르고 오른쪽 벽에는 신작 회화 ‘뉴 액션’과 ‘타면 나타나는 굴’이 내걸렸다. 노형석 기자


전시장 안에 걸린 7점의 그림들 또한 개발과 인력, 금력, 자원의 유동을 목적으로 하는 도시의 흐름과 변화, 개발 양상 등을 배경으로 탐색하면서 아치 모양의 ‘굴’과 ‘터널’이란 공간에 속도감 있게 몰입해 들어가는 양상을 속도감 있는 붓질로 표현하고 있다. 고가도로와 터널, 교차로 등 도시의 구조 등이 반추상화한 선과 색으로 겹쳐지면서 화면을 메운다. 작가가 유학 시절 눈여겨봤던 영국 런던 지하철 공간과 서울의 삭막한 터널 속 차량 질주 장면, 지하도로와 숲 조경 투시도 등의 이미지들이 뒤엉킨 모습 등이 도시의 이면과 지각의 혼돈성을 보여준다. 터널을 비롯한 현대 도시의 여러 구조물의 면면을 우리 몸과 맞닿는 또다른 살갗처럼 질감을 강조하고 인간의 감각과 욕망 등이 정연한 구조물의 질서와 충돌하는 양상들도 회화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 등이 선뜩하게 와닿는다.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와 영국 왕립예술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한 작가는 지난 수년간 도시에서 이동하면서 경험하는 속도와 질서의 감각을 질감과 색감의 화면으로 표출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뮤지엄헤드 외에도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의 기획전 ‘형상회로’(10월26일까지)에서도 터널을 통과하는 시각적 감수성을 위가 휘어진 대형 패널 그림판으로 표현한 설치회화 신작 ‘터널화액션’과 연말 도로를 주행하는 기분과 느낌을 시멘트 안료로 그린 연작 3점을 감상할 수 있다. 2차원 화면 위에 도시 공간에서 움직이는 몸의 감각을 생동감 넘치게 담아내려는 노력이 어떤 변모를 거듭할지 주목된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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