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가을]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로비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희미한 등불 빛에 의지하며 암흑 속을 천천히 걷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하얀 가면을 얼굴에 쓰는 순간 관객들은 호텔의 유령이 되어 투숙객들을 맴돌며 그들의 욕망과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슬립노모어’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맥베스’를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느와르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영국의 창작 집단 펀치드렁크가 창작했다.
[SWTV 스포츠W 임가을 기자] 로비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희미한 등불 빛에 의지하며 암흑 속을 천천히 걷다 보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하얀 가면을 얼굴에 쓰는 순간 관객들은 호텔의 유령이 되어 투숙객들을 맴돌며 그들의 욕망과 비밀을 마주하게 된다.
‘슬립노모어’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맥베스’를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느와르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영국의 창작 집단 펀치드렁크가 창작했다.
2003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공개된 작품은 규모를 키워 2009년 미국 보스턴으로 진출했고, 2011년에는 미국 뉴욕으로 무대를 옮겨 오픈런(상시 공연)의 형태로 10년 이상 흥행했다. 이후 2016년 중국 상하이 진출에 이어 올해 한국에 상륙하게 되었다.
‘슬립노모어’는 대표적인 이머시브 시어터 작품이다. 이머시브 시어터는 관객이 극으로 들어가 자유롭게 이야기를 체험하는 장르로, 관객 각자가 다른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관객들의 분기점은 입장하는 순간부터 갈라진다. 트럼프에 적힌 숫자와 색에 따라 그룹별로 입장하는 관객들은 각자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게 되며 출발점이 달라진다. 특히 엘리베이터의 벨맨은 관객 한 명을 꼽아 홀로 외딴 층에 내려주기도 한다.
이렇게 각기 다른 모험을 시작한 관객들이 탐색하게 되는 매키탄 호텔은 ‘슬립노모어’가 품은 이야기가 펼쳐지는 거대한 무대다. 7층 규모의 건물은 100여 개의 공간을 지니고 있으며, 23개의 캐릭터는 이 공간들을 누비며 18개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180분의 러닝타임 동안 1시간가량 되는 분량의 이야기를 3번 반복하며, 관객들은 각 시간대에 따른 장면을 회차에 따라 다른 시점으로 감상하게 된다.
마치 똑같은 내용을 다시 한번 플레이했을 때 새로운 이야기가 쌓이며 또 다른 감상을 주는 다 회차 게임처럼, 루프를 반복해 다른 캐릭터의 시점이 겹쳐질 수록 또 다른 서사가 보인다. 한 시점의 같은 장면을 다른 과정을 통해 다시 만났을 때, 퍼즐처럼 들어맞는 순간을 경험할 때면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들은 각기 다른 시점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을 따라 이동하며 화려한 무도회장부터 내밀한 부부의 침실, 음산한 공동묘지, 소름 끼치는 정신병동까지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구현해 낸 공간들을 만나게 된다. 단순히 지켜보는 것이 아닌 경험을 하는 공연인 만큼 1939년의 분위기를 살리는 음악과 장소에 어울리는 향까지 세밀하게 배치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흐린 만큼, 배우는 관객에게 직접 손을 뻗기도 한다. 배우가 관객의 가면 위에 입을 맞추거나 춤을 청하는 등의 참여 유도가 자주 등장하며, 운이 좋은 관객은 배우에게 지목당해 밀폐된 공간 안에서 비밀스러운 1인극을 감상할 수도 있다.
몸짓과 소리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넌버벌’ 공연이라는 점도 ‘슬립노모어’의 주된 특징이다. 배우들은 날 것의 감정과 초현실적인 현상을 컨템포러리 댄스, 립싱크, 마임 등 가지각색의 방법으로 표현한다. 가끔 등장하는 짤막한 대사 중 포함된 한국어 대사도 서울 공연에서만의 묘미이다.
이처럼 대사를 통해 이야기가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줄거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리 ‘맥베스’의 줄거리를 숙지하고 가는 편이 좋다.
기본적으로는 ‘맥베스’의 서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어 처음으로 관람한다면 맥베스 부부를 따라다니는 것이 이해하기 쉽지만, 히치콕 감독의 ‘레베카’, ‘현기증’ 등에 모티브를 따와 ‘맥베스’ 서사와는 별개로 진행되는 이야기 역시 존재해 관객이 너무 붐벼 관람하기 힘들다면 서브 캐릭터의 이야기를 탐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인간의 욕망을 다룬 대표적인 고전 ‘맥베스’를 재해석한 만큼 성인가 공연 중에서도 수위가 강한 편이다. 전라, 유혈 장면이 즐비하고 눈앞에서 직접 봤을 때 절로 ‘헉’ 소리가 날 정도로 폭력적인 행위도 존재한다. 이와 같은 장면들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만큼 과감하고도 거침없는 표현이 작품의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모두가 다른 이야기를 경험한다는 건 곧 모든 이야기를 볼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한 번의 관람으로 작품이 품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경험하고 싶고, 명확한 기승전결을 알고 싶은 관객이라면 불만족할 수도 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강렬한 순간을 경험하고 싶은 관객이라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
한편 ‘슬립노모어 서울’은 서울 충무로 소재의 매키탄 호텔에서 상시 공연된다.
- 관람 TIP
1. 호러 장르의 작품은 아니지만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의 공간이 많으며 천둥 등의 섬광과 비명소리 등이 자주 사용된다. 이를 두려워한다면 약간의 각오가 필요하다.
2. 편한 신발, 시원한 옷이 필수다. 러닝타임 대부분의 시간을 일어서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배우들의 동선을 따라 이동하다 보면 계단을 쉴 새 없이 오르내려야 한다.
3. 관객당 하나씩 지급되는 웰컴 드링크는 관람 후에도 사용이 가능하다.
4.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 파악하기 위해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것도 추천한다.
5. 일행이더라도 손을 잡고 다니거나 대화를 나누는 행동은 지양하자. 타인의 몰입을 깨는 것은 물론이고, 바쁘게 움직이는 타 관람객들의 진로에 방해가 된다. 각자의 여정을 마친 후 공연장을 나와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는 것도 ‘슬립노모어’의 즐거운 순간 중 하나이다.
6. 배우들은 공간을 크고 넓게 사용한다. 어느 정도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가까운 자리에서 관람하게 된다면 그들의 동선에 맞춰 눈치 빠르게 비켜주는 센스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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