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중 8곳, '2차 상법 개정'에 부정적…차등의결권·포이즌필 등 "방어장치 시급"
'2차 상법개정' 기업 영향 조사/그래픽=임종철 |
국회를 통과한 2차 상법 개정안으로 재계는 투기성 해외자본의 이사회 침투가 더 쉬워졌다고 걱정한다. 소수 주주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도입했지만 경영권 위협과 이사회 파행 등 예상되는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빈번한 표 대결로 주총장이 전쟁터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기업들은 최근 여권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가능성에도 강한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자사주는 국내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가장 많이 활용해온 수단이다. 재계는 포이즌필,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25일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8단체는 이날 법안 통과 직후 '유감 성명'을 내는 등 강한 반발과 실망감을 드러냈다. 지난달 '주주 충실의무'를 강화한 1차 개정에 이어 별도의 경영권 방어장치에 대한 논의 없이 '더 센 상법'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으로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정관 배제 불가)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가 300개 상장기업 대상으로 실시한 '상법개정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 결과, 상장기업 76.7%는 2차 상법 개정안이 기업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74%는 경영권 위협 가능성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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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로 표 몰아주기 가능...이사회 파행으로 일본은 '의무화 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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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투표제 도입 및 의무화 여부/그래픽=윤선정 |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동시에 선출할 때 주주가 말 그대로 표를 집중시킬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예컨대 이사를 3명을 뽑는다면 주주 1명에게 3개의 의결권이 생기고 이를 한 후보에 몰아 줄 수 있다. 소수 지분만으로도 이사 선출이 쉬워진다.
해외투기성 자본과 소액 주주 연합이 손을 잡으면 경영권 분쟁 위험은 더 커진다. 장기 성장 대신 핵심자산 매각 등 단기 이익 중심의 의사결정을 강요할 수 있고 영업비밀과 경영정보 유출 위험도 있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드는 위임장 대결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폐지했고 일본은 이사회 내 파벌 싸움과 혼란을 이유로 1974년에 의무화를 없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도 기업에는 골치다. 외부 추천 인사가 감사위원회를 주도하면서 이사회와 충돌이 잦아질 수 있고, 후보 검증 부담도 커진다. 경쟁사가 추천한 인사가 선임될 경우 기업기밀 유출 가능성도 제기된다.
외부 세력의 경영권 공격에 취약해진 상태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도 추진된다. 여당은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처분 방식의 공정화 등 크게 두 갈래에서 법안을 다수 발의한 상태다. 이날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자사주 제도 개선에 대한 토론을 시작으로 추가 상법 개정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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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포이즌필 필요…기업, 이사회 축소·임기 시차제 대안 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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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과 소송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회는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주길 바란다"며 차등의결권(창업주·경영진 등에게 더 많은 의결권 부여), 포이즌필(적대적 인수합병 방어장치), 황금주(거부권이 부여된 특별주식)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방어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현재 주요국 중 한국만이 상장사에 경영권 보호 제도가 전무한 상태다.
또 재계는 경영판단원칙 명문화와 배임죄 개선도 요구했다. 현행 배임죄는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아도 '손해 발생 위험'만으로 처벌이 가능하고 모험투자 과정에서도 배임죄가 적용된다. 특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배임죄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가중처벌 규정으로 40년 전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시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형량도 너무 무겁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거세지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산을 2조원 미만으로 유지하거나 자진해서 상장 폐지하는 '피터팬 증후군'도 심화할 수 있다. 재계는 "기업규모별 차등규제·인센티브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상법 개정 통과에 따른 이사회 구성원 변화를 시뮬레이션 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집중투표제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이사회 구성원을 줄이거나 이사 선출 시기를 분산하는 임기 시차제 도입 등이 거론된다. 또 이미 통과한 '3%룰'과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호 지분 확보가 핵심 대응 전략으로 꼽힌다.
대기업 관계자는 "여당에서 경영권 보호, 배임죄 개선 등의 목소리를 내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없는 상황"이라며 "적에게 칼을 쥐여줬으면 방어할 수 있는 방패도 필요한데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없다"고 말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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