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바이올리니스트 아델 앤서니와 길 샤함이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바흐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서 길이 연주할 때면 숨을 죽이고 듣게 되는 부분이 있어요. 말 그대로 그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죠.” (아델 앤서니)
아내는 무대 위 남편의 연주를 듣다 보면 예상치 못한 ‘감동의 순간’들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아델은 악구를 능숙하게 다루어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며 한마디 보탠다. 남편은 그 순간을 만날 때마다, 아내의 다음 연주, 또 다음 연주를 기다리게 된다.
바이올리니스트 부부 길 샤함(54)과 아델 앤서니(55) 부부는 서면으로 나눈 인터뷰에서도 사랑과 존중이 묻어났다. 이번에 한국을 찾은 이 부부는 바이올리니스트 듀오로서 처음으로 협연 무대를 갖는다.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돼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길 샤함의 바이올린 연주는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중장년 세대라면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불멸의 히트작 속 메인 테마를 그가 연주해서다. 바로 지난 1995년 방영된 ‘모래시계’(SBS)에 나온 파가니니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e 단조 소나타’다. 최고 시청률 65%를 기록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숨 막힐 듯 애절한 바이올린의 음색은 지금도 많은 한국인이 기억한다.
부부 바이올리니스트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듀오인 만큼 많은 점이 닮았다. 같은 질문에 남편은 “아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답변을 시작하고, 아내는 “길의 이야기처럼…”으로 답변을 이어간다. 두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 역시 같다. 재즈 가수인 엘라 피츠제럴드다.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같은 가치관으로 음악을 대하며,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두 사람에게 부부 듀오로 산다는 것은 더없이 특별한 일이다.
아내 앤서니는 “무대에 오를 때 가장 친한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며 “안심이 되는 동시에 연주에 대한 열망을 느끼게 한다”고 했다. 남편 샤함 역시 “아델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것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선다. 인생의 오랜 파트너이기에 무대 위에서 서로의 의도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큰 의미”라고 했다.
부부 바이올리니스트 아델 앤서니와 길 샤함이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에 초청, 오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
부부가 같은 음악을 하고, 같은 악기를 다루는 일을 하는 것은 장점이 많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다 음악적 고민과 질문에 대해도 서로 조언할 수 있어서다. 앤서니는 “동료 바이올리니스트보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항상 음악에 대해 도움을 주고 질문에 답해줄 사람이 있으며, 더 나은 운지법(Fingering)이나 운궁법(Bowing)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모든 게 좋을 수만은 없다. 샤함은 “같은 악기를 다루기에 서로에게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의견 차이가 생길 수 있다”며 “하지만 이런 긴장감이 결국 서로를 더 나은 연주자로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듀오이지만 저희는 연주에 분명히 다른 성격이 반영돼요. 길의 연주엔 존경할 점이 셀 수 없이 많고, 저는 가능한 한 그에 맞추려고 노력해요. 저희는 아마도 서로의 소리와 음정을 조화롭게 맞추는 데 가장 집중하는 것 같아요.” (아델 앤서니)
“아델은 사람들이 자기 모습 그대로 연주한다고 말합니다. 전 그녀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동시에 그녀의 연주는 결코 모방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길 샤함)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서로를 지켜봐 왔다. 둘 다 ‘세종솔로이스츠’를 창립한 강효(80) 줄리어드음악원·예일대 교수의 제자다. 앤서니의 경우 세종솔로이스츠 창단부터 12년간 리더로 몸담았다. 두 사람이 이번 ‘힉엣눙크!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것도 이러한 인연 덕분이다.
앤서니는 “강효 교수님과의 오랜 음악적 관계는 내 바이올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하는 것은 가족과 같다. 줄리어드 시절의 소중한 동료와 친구들이 많고, 줄리어드에서 직접 가르쳤던 젊은 연주자들도 있어서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온전한 순환(full circle)’을 이룬 것 같다”고 했다. 샤함도 “세종솔로이스츠는 그의 음악적 성장의 발판이 됐다”며 “아델의 인생에 세종솔로이스츠는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봤다.
길 샤함과 아델 앤서니 부부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
이번 공연에서 두 사람은 세종솔로이스츠와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d단조’, 이스라엘 작곡가 아브너 도만의 협주곡 ‘슬퍼할 때와 춤출 때’로 관객과 만난다. 도만이 부부에게 헌정한 이 곡은 지난 4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초연됐다. 아시아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샤함은 “두 곡 모두 깊은 영성을 지니고 있다”며 특히 “바흐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 가슴 아픈 ‘한숨 쉬는’ 모티프가 있는데, 도만 작곡가도 이 모티프를 자신의 곡에서 매우 감동적으로 사용했다”고 했다. 앤서니는 “도만은 바흐의 작품을 참조해 작곡한 만큼 두 곡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며 “도만의 곡은 재즈, 블루그래스 피들링, 중동 음계는 물론 현대적 스타일과 고전적 기법을 아우른다”고 설명했다.
음악을 만들어갈 때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한다. 앤서니는 “서로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나누며, 한 사람이 제시한 의견에 다른 한 사람이 즉각적으로 영감을 받기도 한다”고 했다. 의견이 다를 때도 있지만, 그것 자체가 ‘건설적 논의’라는 게 앤서니의 설명이다.
듀오로 한 무대에 설 때 두 사람은 자유롭게 파트를 바꿔가며 연주한다. 이번엔 아델이 퍼스트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샤함은 “파트를 번갈아 연주하면 다른 시각에서 음악을 경험하고, 서로의 역할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된다”며 “무대 위에서 훨씬 더 유기적인 호흡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부부 듀오는 “음악이 즐거워진다”고 했다. 오랜 시간 음악을 했지만, “새로운 작품을 작업할 땐 백지상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익숙한 음악에선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더하기 위한 틈을 찾는 것”(아델 앤서니)을 즐긴다.
“뭐든지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도전이에요. 같은 곡을 연주할 때도, 예전에 몰랐던 새로운 감정이나 의미를 발견할 때가 많아요. 한 곡을 수십 년간 연주해도 매번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점이 바로 클래식 음악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길 샤함, 아델 앤서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