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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한국과 남겨진 대만 타이베이서 만난 일본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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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부터 차, 한약재, 건어물 등을 거래하던 전통시장 디화제. 타이베이 관광청

19세기부터 차, 한약재, 건어물 등을 거래하던 전통시장 디화제. 타이베이 관광청


대만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놀라는 점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의 활용'이다. 대만과 한국은 같은 시기에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지만 일본에 대한 태도는 사뭇 다르다. 한국과 달리 식민지 시설 잔재들을 보존하고 현재까지도 일본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양국 간 차이는 특히 일제강점기 건물 활용 방식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국이 일제강점기 유산을 '지워야 할 과거'로 보고 철거 또는 복원을 택했다면, 대만은 '보존해야 할 자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일제의 역사 흔적을 따라가 봤다.

日 감성 입힌 식민 유산이 관광지로

타이베이는 당시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이를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것도 일본의 정취를 살려서. 대표적인 사례가 '용금생활단지(榕錦時光生活園區)'다. 1900년대 '타이베이 감옥'으로 쓰였고, 일제강점기에는 타이베이형무소 직원 숙소로 사용했다. 2021년부터 보수 작업을 통해 △일본풍 카페 △전통 공예점 △소규모 전시관이 들어선 복합문화단지로 변모했다. △목조건물 △기와지붕 △일본식 정원 등 일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지며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형무소 용지가 일본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셈이다. 이는 고문실과 수감 공간을 그대로 재현해 식민지 현실을 알리는 한국의 서대문형무소와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또 다른 명소는 '쑹산 문화창의공원(松山文創園區)'이다. 1937년 일본이 건립한 타이베이 담배공장은 2001년 시 지정 유적지로 등록된 뒤 2011년 문화·예술 복합 공간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현재 대만 최대 규모의 디자인·예술 플랫폼 중 하나로 △전시 △기념품숍 △디자인 박람회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인기 애니메이션 팝업스토어가 열려 연중 내내 내부에서는 활기가 넘친다. 붉은 벽돌 공장 건물과 굴뚝, 내부 목재 구조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반복된 식민 지배가 만든 다른 시선


타이베이시에는 일제강점기 건물을 원형 그대로 유지한 사례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이 199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경복궁을 복원한 것과 달리 대만 총통부 건물은 여전히 총통 집무실로 사용 중이다. 1919년 일본이 대만총독부 청사로 준공한 뒤 지금까지도 행정 중심지 역할을 이어왔으며, 야간 경관 조명 덕분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현재는 대만 근대 건축의 상징 중 하나로 꼽힌다.

베이터우(北投) 온천도 같은 맥락이다. 1894년 독일계 상인 오엘리(Ouely)가 베이터우 온천의 유황을 활용해 작은 온천 클럽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2년 뒤 일본인 사업가가 대만 최초의 온천 여관인 '천구암(天狗庵)'을 열며 본격적으로 개발이 이뤄졌다. 이후 일본의 체계적인 정비를 거쳐 온천 마을로 커졌다.

1913년 일본인이 세운 공중 온천을 개조한 베이터우 온천박물관은 일본식 목욕 문화와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인근에 위치한 베이터우문물관은 1921년 지어진 최고급 온천 여관 '가산여관(佳山旅館)'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장교 클럽이자 휴양지로 쓰였다. 현재는 일본 전통 다도 체험과 예술 공연이 열리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온천 마을을 중심으로 일본식 료칸들이 들어서면서 베이터우는 타이베이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온천 여행'이라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이어받아 발전시킨 셈이다.

쓰쓰난춘.

쓰쓰난춘.


다층적 시간이 합쳐진 혼합의 풍경

"한국과 달리 대만은 이민자가 많고 다양한 문화융합을 받아왔어요. 한국과 일제강점기에 대한 인식이 다른 이유죠." 현지 가이드 세라 씨의 말이다. 대만은 스페인, 네덜란드, 청나라 등 여러 외세의 지배를 반복적으로 겪었다. 일본도 수많은 외세 중 하나로 인식됐기에 강한 민족적 거부감의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런 대만의 역사적 배경이 타임라인처럼 켜켜이 쌓인 거리가 있다. 청나라 시절부터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던 '다다오청'이다. 이곳의 대표 거리인 '디화제(迪化街)'는 19세기부터 차, 한약재, 건어물 등을 거래하던 전통시장이었으며 지금도 곳곳에 바로크식 건축, 일제강점기 건축 양식, 현대 상업 건물이 층층이 어우러져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한 장면 안에 서로 다른 문화의 건축물이 공존하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거리 한쪽에 세워진 도교 사당 하해성황묘(霞海城隍廟)는 월하노인에게 연애·결혼을 기원하는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 맞은편 용러시장 광장에서는 팝업스토어가 열린다. 기도하는 사람들과 팝업스토어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들. 전통과 현대가 한 프레임 안에 담긴다.

신의구에 위치한 쓰쓰난춘(四四南村)도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곳이다. 1950년대 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군인과 가족들이 살던 군인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지역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전시장이 들어선 문화마을로 탈바꿈했다. 저층 주택들 너머로 솟은 타이베이 101 전망대가 대만의 시간을 한눈에 보여준다. 오랜 시간 여러 문화로 새겨진 역사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타이베이 문서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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