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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누가 개미들의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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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이재명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운 건 적절치 못했다고 본다. 실현 불가능한 허황된 수치여서가 아니다. 목표는 원래 조금은 도전적이어야 한다. 주가 상승에 배가 아플 것 같아서도 아니다. 소액 개미투자자이기도 하거니와, 설령 주식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주가 상승의 간접 수혜는 볼 수 있다.

이 목표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건, 5년 내내 정부 정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있다고 봐서다.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5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환원하는 세제개편안을 두고 정부가 아직도 갈팡질팡하며 매듭을 짓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개미들은 이 세제가 ‘코스피 5000’ 공약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대주주들이 연말에 양도세를 피하려 주식을 대거 내다 팔면 주가가 출렁이며 개미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유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연말에 내다 판 주식은 연초에 다시 사들이기 마련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주가에 큰 마이너스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 반론은 “’코스피 5000’을 약속한 정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개미들의 아우성에 파묻혔다. 국민의힘은 ‘개미 대변자’임을 자처하며 정부·여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증권거래세 인상을 두고도 말들이 나온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을 전제로 인하한 것을 원상 복구하는 것일 뿐이지만, 증시 활성화에 역행한다고들 반발한다. 심지어 법인세 복원을 두고도 “기업이 가져갈 이익을 정부가 세금으로 가져가면 주가가 떨어진다”고 한다. 모든 게 '코스피 5000'으로 수렴된다. 이대로면 나라 곳간은 점점 비어가는데 이재명 정부 5년 내내 증세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코스피 5000' 5년 내내 정책 족쇄 될라
개미가 모든 정책 최우선 고려 대상 아냐
이분법 공방 벗어나 건강한 증시 조성을

수많은 정부 정책이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좇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주식시장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기업 친화적 정책도 필요하고, 노동 배려 정책도 놓쳐선 안 된다. 그럼에도 주가 5000을 약속했으니 주가 상승에 방해가 되는 정책들은 앞뒤 따지지 않고 모조리 배척해야 한다는 정서는 너무 편향적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실용 성장을 말하면서 노란봉투법 같은 규제를 밀어붙이는 이율배반적 행보를 한다는 일각의 질타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언뜻 맞는 지적 같아 보이지만, 둘은 양립 불가하지 않다. 때론 성장을 우선시해야 할 사안도 있고, 때론 공정을 또 분배를 우선해야 할 사안도 있는 법이다.


상법 논란을 보면 더 선명하다. 개미들을 앞세워 대주주 양도세 확대를 결사반대하는 국민의힘은 또 다른 개미 숙원인 상법 개정에 배수진을 친다. 상법 개정안 내용이 뭔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한 게 앞서 민주당이 일방 통과시킨 개정안의 골자다. 경영진과 대주주만을 위해 일해온 이사들이 소액주주들을 위해서도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개미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민주당이 추가로 밀어붙인다는 ‘더 센 상법’은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을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대주주 중심의 이사회와 감사위원회를 소액주주들이 견제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상법 개정에서는 개미를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다. “경영권이 위협받는다”는 재계 입장만 적극 대변한다. 연말에만 잠시 주가 출렁임이 있는 양도세 문제와 연중 내내 기업 경영에 영향을 주는 상법 중 어떤 것이 개미들에게 더 중요한 건가. 그런 이분법적 논리라면, 개미들의 적이 이재명 정부인지 아니면 국민의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어떤 훈육도 하지 말라고 하진 않는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벌벌 떨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게 자녀를 망치는 길이라는 걸 모두 안다. '코스피 5000'도 건강한 증시 환경에서 달성해야 한다.

이영태 논설위원 yt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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