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최영규가 서울시발레단의 더블 빌 중 한 작품인 한스 판 마넨의 ‘파이브 탱고즈(5 Tango’s)’에 무용수이자 리허설 디렉터로 참여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착 착 착, 착 착 착.’
꼿꼿하게 세운 허리, 우아하게 내딛는 다리, 흔들림 없는 피루엣. 타악 소리에 맞춰 한 발씩 점프하듯 내딛다 빙그르르 돌아 착지한다.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악마를 잡아라(Vayamos Al Diablo)’에 맞춰 가뿐하게 손발을 뻗고, 뛰고, 회전하는 그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악마였다. ‘악마의 유혹’은 달콤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노들섬 서울시발레단 연습실에서 열린 ‘파이브 탱고즈(5 Tango’s)’시연 현장. 바쁜 일정으로 서울 공연을 앞두고도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갈 수 없었던 최영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NDB) 수석 무용수는 기자들을 앞에 두고 “지금 그냥 시작하면 되나”라고 물으며 쑥스러워 했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는 잠시였다. 순식간에 표정을 바꾼 그는 곧 노들섬을 ‘악마의 놀이터’로 뒤바꿔 버렸다.
“이 작품은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구조적·기술적 정교함과 감정의 진정성이 있는 작품이에요. 정열적이면서 서정적 슬픔이 공존하죠.”
최영규는 객원 수석 뮤용수이자 리허설 디렉터(연습 지도자)로 참여하는 서울시발레단의 ‘파이브 탱고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발레단은 한스 판 마넨의 ‘파이브 탱고즈’와 함께 안무가 유회웅의 ‘노 모어(No More)’를 엮어 더블 빌(두 개의 작품을 같이 공연) ‘유회웅×한스 판 마넨’(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을 선보인다.
‘파이브 탱고즈’는 판 마넨이 아르헨티나 작곡가 피아졸라의 ‘탱고 누에보’에 맞춰 만든 작품이다. 1977년 NDB에서 초연, 이번이 아시아에서는 첫 무대다.
최영규는 “판 마넨 작품의 큰 특징은 음악성에 있다. 그의 작품은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은 안무가 중요한 포인트”라며 “그는 주입식이 아닌, 무용수가 자기 색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안무가”라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 최영규는 일찌감치 콩쿠르 무대를 석권한 무용수로 2011년 NDB에 코르 드 발레(군무 단원)로 입단, 2016년 1월 입단 4년 6개월 만에 수석 무용수가 됐다. 그는 “(NDB 단원으로서) 10년 이상 쌓인 노하우가 있을 것”이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컨템포러리 발레의 경험과 노하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판 마넨은 NDB의 수석 안무가와 예술감독을 지냈고, 현재 상임 안무가로 재임 중이다. ‘파이브 탱고즈’는 최영규에게도 당연히 친숙한 작품이다.
그는 “이번에 무용수이면서 스페이저로 온 펠린느 반 디지켄을 도와 연습 지도자로 함께했다”며 “NDB에서는 내가 추는 부분에만 몰두했다면 이번엔 작품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전엔 미처 몰랐던 작품의 깊이를 다시금 보게 됐다”고 말했다.
최영규가 주인공인 ‘파이브 탱고즈’와 함께 선보이는 작품은 유회웅 안무가의 ‘노 모어’다. 지난해 서울시발레단이 초연,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과 좌절, 이를 이겨내고 희망을 향해가는 움직임을 표현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로 알려진 무용수 강경호가 주연을 맡았다. 유회웅은 “일상에서 주제를 찾는 편”이라며 “발레는 사회를 이야기하는 매개체”라고 했다. 이어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도, 결혼도, 일도 포기하는 ‘N포세대’라고 하더라”며 “이들에게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현실을 이겨 나가고 더 나은 에너지를 주고 싶은 마음에 작품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노 모어’는 안무와 음악의 어우러짐이 일품이다. 음악은 밴드 실리카겔의 김건재가 맡았다. 유회웅은 “일상의 걸음걸이나 심장 박동소리에 에너지를 받아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강렬한 드럼 비트의 음악을 만들어줬다”며 “파괴적이면서도 일률적인 비트를 통해 사랑이나 경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강경호는 ‘스테이지 파이터’로 팬덤을 쌓기 전부터 유회웅이 눈여겨본 무용수였다. 초연에 이어 이번에도 무대에 서는 그는 “작년엔 무용수 7명이 함께했는데, 올해는 이보다 두배가량 많아졌다. 움직임으로나 안무로나 다채로운 느낌”이라고 했다. 이어 “초연 때에는 힘든 인생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엔 어려움을 이겨내고 위로하는 긍정적 메시지가 더 많이 담겼다”며 초연과 달라진 점을 설명했다.
거장 안무가와 더블 빌로 무대를 꾸미지만 유회웅은 오롯이 자신의 안무와 메시지로 관객과 만난다는 생각이다. 그는 “(두 작품을) 비교하기 보다는 내 작품과 내 색깔을 관객들에게 잘 보여줄 너무나 좋은 기회이니 잘 살려 누가 되지 않게 잘 해보자는 마음이 크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고승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