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및 유럽 정상들과 회담 중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이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나더라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후 안전 보장은 미국이 아닌 유럽 국가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밴스는 20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라도 유럽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안전보장에 있어) 가장 커다란 짐을 져야 할 것”이라며 “이는 그들 대륙에서 일어나는 그들 안보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밴스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전후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밴스의 발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휴·종전 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은 군사적으로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선을 그은 것으로 풀이된다.
3년 6개월 동안 벌어진 전쟁의 휴·종전 여부를 결정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담판을 앞두고 미국의 입장이 바뀌고 있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미군 병력을 활용해 러시아의 위협에서 우크라이나 안전을 지켜주겠다는 입장에서 벗어나, 유럽의 안보 책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밴스의 발언 전날에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나토(NATO·북대서양조양기구) 동맹국 합참의장 화상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대해 미국은 최소한의 역할만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밴스와 콜비의 발언은 트럼프와 푸틴의 알래스카 양자 회담(15일), 트럼프와 젤렌스키·유럽 정상 간 연쇄 회담(18일) 이후 나온 미국 측 입장과 배치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젤렌스키 및 유럽국 정상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종전 협정 체결 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좋은 안보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재침공 방지를 위해 서방의 확고한 안전 보장을 최우선으로 요구해왔고 그중에서도 미국의 확약을 받기를 가장 원했던 만큼, 트럼프의 안전 보장 약속은 회담의 최대 성과로 평가됐다.
그러나 분위기는 이튿날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트럼프는 지난 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내 유럽군에 대한 공중 지원은 고려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및 유럽 국가들이 가장 바라던 지상군 파병 가능성에는 명확히 선을 그었다. 이어 군사적 지원 가능성 자체를 일축하는 트럼프 핵심 측근들의 발언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폴리티코는 이 같은 기류 변화를 두고 “유럽이 결국 우크라이나 안보 책임을 실질적으로 떠안아야 한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특유의 오락가락하는 변덕에 유럽 정상들이 휘둘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트럼프 2기 국방 정책의 설계자로 알려진 콜비는 그간 유럽이 러시아 위협에 맞설 자율적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실제로 그는 지난 7월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탄약 비축분 검토 결과를 이유로 탄약 지원을 일시 동결시키도록 주도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유럽이 트럼프 행정부에 뒤통수를 맞고 사실상 ‘의지의 연합’ 시절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의지의 연합은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중단 가능성에 대비해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을 주축으로 자유 진영 국가들이 꾸린 다국적 협의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의 일관되지 않은 우크라이나 정책으로 인해 유럽이 명확한 방어 전략을 세우기 어렵게 되고 있다”고 했다.
이처럼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 문제를 두고 서방 내에서 이견이 표출될 경우 러시아의 입지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0일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배제된 상태에서 논의되는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굳건하고 단호하게 국익을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휴·종전 협정 이후의 과정에도 강력하게 개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