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 자동차 매체 오토모티브 뉴스(Automotive News)와의 인터뷰에서 비전과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현대차그룹이 ‘혁신 DNA’와 ‘고객 중심 경영’을 핵심 축으로 삼아 미래 산업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100주년 기념상 수상자에 오르다
1925년 창간한 오토모티브 뉴스는 세계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문 매체 중 하나다. 이 매체는 지난 18일 현대차그룹의 3세대 경영인인 정주영 창업회장,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을 ‘100주년 기념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세계 자동차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경영진이라는 평가와 함께, 한국 자동차 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다시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 회장은 인터뷰에서 “고객 경험이 완전히 새롭게 바뀔 것”이라며 미래 모빌리티 혁신의 핵심으로 소프트웨어 정의 자동차(SDV)와 인공지능(AI)의 융합을 꼽았다. 그는 “과거 자동차 산업은 마력(horsepower)이 핵심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연산 능력(processing power)이 중심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동화가 파워트레인을 재정의했다면, 소프트웨어는 제품 개발과 차량 구조, 사용자 경험, 비즈니스 모델을 포함해 가치사슬 전반을 재정의하고 있다”며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협력 전략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정 회장은 글로벌 파트너십 전략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협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때만 파트너십을 맺는다”고 말했다.
최근 자동차 산업이 대규모 인수합병에서 역량 중심의 스마트 협력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현대차그룹 역시 빠르고 민첩한 협력을 통해 산업 전반에서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가문 경영의 연속성과 영향력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정 회장은 “할아버지 정주영 창업회장께서는 ‘시류를 따르고 사람에 집중하라’고 늘 말씀하셨다”며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세가 지금의 경영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회상했다.
또한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은 글로벌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며, 품질과 안전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경영 철학을 남겼다”며 “이 두 축이 오늘날 현대차그룹 비전의 근간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미래 핵심 기술, SDV와 AI 융합
향후 25년간 자동차 산업을 바꿀 핵심 기술로는 단연 SDV와 AI가 꼽혔다. 정 회장은 “차량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보다 어떻게 사고하고 학습하며 진화하느냐가 중요해진다”며 “스마트폰처럼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플랫폼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권역형 E/E 아키텍처와 고성능 컴퓨팅 플랫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정 회장은 “고객 경험을 혁신할 수 있는 토대는 결국 컴퓨팅 역량에서 나온다”고 덧붙였다.
자동차 산업을 바꾼 인물로는 카를 벤츠, 페르디난트 포르쉐, 헨리 포드, 조르제토 주지아로, 일론 머스크 등을 언급했다. 그는 “이들은 기술·생산·디자인·소프트웨어 등 각 분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젖힌 인물들”이라고 평가했다.
◆글로벌 통상환경과 대응 전략
최근 강화되는 무역 장벽과 관련해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강점은 민첩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판매하는 곳에서 생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특히 미국에는 제조·공급망·철강 생산 등 전방위적으로 2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현지 생산 확대를 넘어 지역 경제와 긴밀히 연결된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 회장은 “1986년 미국 시장 진출 이후 지금까지 205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2028년까지 추가로 210억 달러를 더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룹은 최근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 연간 50만 대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메타플랜트(Metaplant)’를 준공했다. 이는 직간접적으로 10만 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며,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전동화 전략을 상징하는 거점으로 평가된다.
◆지속가능경영 “탄소중립은 목표 아닌 책임”
지속가능경영과 관련해 정 회장은 “탄소중립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책임”이라며 2045년까지 탄소 순배출 제로(Net-zero)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이를 위해 그룹은 RE100 이니셔티브에 맞춰 2045년까지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2035년부터 무공해 차량만을 판매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그는 “수소는 세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가장 유망한 해법 중 하나”라며 수소 경제 비전도 강조했다.
한편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차종으로는 포르쉐 911, 람보르기니 쿤타치, 폭스바겐 골프를 꼽았다. 각각 기술, 디자인, 실용성 측면에서 시대를 상징하는 모델이라는 이유다.
이 답변은 정의선 회장이 단순히 기업 경영자에 머물지 않고 자동차 자체에 대한 애정과 통찰을 가진 ‘자동차인(人)’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40년대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
2040년대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 전략에 대해 정 회장은 “기술 혁신을 포용하고 고객 중심의 접근을 이어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AI, SDV, 전동화가 미래 모빌리티의 중심이며, 새로운 기술은 반드시 사람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정 회장은 2050년 한국 자동차 산업의 모습을 “공장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하고 유연하게 진화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소프트웨어 중심 AI, 디지털 트윈, 첨단 로봇 기술이 공장에 도입돼 사람과 기계가 협업하는 체계로 전환될 것”이라며 “반복 업무는 기계가 맡고, 사람은 창의적 역할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50년 현대차그룹의 미래상
현대차그룹의 미래에 대해서는 “단순히 자동차를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모빌리티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율주행, 로보틱스, AI, 수소 에너지 등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을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이다.
정의선 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혁신은 현대차그룹의 DNA이며,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성공 지표는 언제나 고객 만족”이라며, 다시 한번 고객 중심 경영 철학을 강조했다.
정 회장은 이번 인터뷰를 통해 현대차그룹은 단순한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미래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으로 전환 중임을 어필했다. 또한 창업 이래 이어온 ‘고객 우선주의’와 ‘혁신 정신’을 미래 전략과 연결시키며 그룹 청사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재원 기자 jkim@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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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기자 jkim@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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