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 코인, 근본 취지가 흔들린다

[고상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진흥을 위한 법안을 처음으로 공개한 후 이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달러 패권 주의가 디지털 금융시대에서도 더욱 팽창하고 있는 가운데, 최소한의 원화 경쟁력을 확보하자는 것이 법안 발의의 목적이다. 달러 스테이블 코인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화 경쟁력 확보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처음 기획은 진입장벽을 낮춰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자본금도 최소 5억원으로 책정해 사업자 난립이 우려되기도 했다. 이른바 '벌떼작전'으로 단숨에 산업을 확산시키겠다는 최초 발의자의 의도가 엿보였다.

이 프로젝트가 사회 전반으로 대단한 반향을 이끌어 내면서 여야 의원들이 유사한 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지금은 각기 다른 4건의 법안을 통합하기 위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법안 통합 과정에서 당초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사업을 준비 중인 기업이나 관계자들의 혼란이 커지며 소문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5억 원이었던 자본금 규모가 10억 원으로 늘더니, 지금은 50억 원으로 대폭 증액될 것이 유력해 보인다. 또 금융권에게만 사업자 자격을 허용한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실제로 금융권은 경쟁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를 출원하면서 시장 장악을 위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기존 금융권의 시스템을 활용하면 관리는 편하겠지만, 확장성이 떨어지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다.

CBDC에 올인하던 한국은행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방향이 바뀌자 슬며시 숟가락을 얹히는 모습이다. 대기업과 비은행권의 사업 참여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금융권 편을 들고 있다. 결정이 늦어지고 사공이 많아지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모양새다.

블록체인에서 돌아가는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금융 시스템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금융권이 스테이블 코인 사업도 잘 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는 얘기다. 결정권자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내용이다.

대규모 금융자본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사업 성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특정 산업군이 사업을 좌지우지 하게 하는 것은 자유경쟁체제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특정 지역이나 사업에서는 그와 연관된 중소사업자가 역량을 발휘할 수도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일찌기 도입해 활용하는 주요국들도 민간사업자의 참여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다양성이 산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크립토 금융을 억지로 전통 금융의 틀 속에 가두어서는 사업 성공이나 확장성에 도움이 안 된다.

아무리 완벽한 법안을 만들고 진입장벽을 높여 자격을 강화한다 해도 사업 초기의 혼란과 시행착오는 뒤따르기 마련이다. 새로운 산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환경과 정책이 뒷받침 해주어야 한다. 맞지도 않는 틀에 가두어버리면 뿌리를 내리지도, 가지를 뻗을 수도 없다. 결국은 고사해버리고 만다.

더구나 새로운 산업을 키우겠다면서 관리/통제가 편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면 첫 걸음부터 잘못 내딛는 것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적절한 규제는 산업 확장을 위한 바람직한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상식을 넘어선 규제는 관리자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통제일 뿐이다.

진입장벽이 낮을수록 많이 들어오고 많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러한 시행착오 또한 산업 기반을 튼실히 하는 과정의 일부다.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으로 글로벌 통화질서는 이미 변하고 있다. 변화를 맞이하기 위한 유연하고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고상태 미디어신사업부 국장 qkek619@tg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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