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
코로나19를 거치며 장기간 지속된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고 현상은 불어난 계곡물의 거센 물살처럼 우리 경제를 위협했다. 특히 취약계층의 경제난을 더욱 가중시켜 연체의 늪으로 빠뜨렸다. 이에 금융당국에서는 지난 6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가칭)을 발표하고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7년 이상 연체한 5000만원 이하의 개인 연채채권을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설립하는 SPC(특수목적법인)가 매입 후 소각하는 형태로 약 113만명을 구제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자력으로는 도저히 거센 물길을 건널 수 없는 분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배드뱅크'는 이름이 주는 부정적 어감과 달리, 사실 우리사회와 경제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배드뱅크는 부실화된 채권을 신속히 매입해 금융부실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방지하고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제고시킨다. 또 '공적 채무조정'을 통해 채무자들이 '불법추심'으로부터 보호받으며 소득과 자산을 고려한 균형있는 채무조정으로 정상적인 경제주체로 복귀할 수 있게 돕는다.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등 국가경제 위기마다 정부가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공적 자산관리 전문기관인 '캠코'에 운영을 맡겨온 이유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3년에 발표한 '월드이코노믹아웃룩'에 따르면 채무조정 이후 경제활동 복귀자는 3~5년 내 정부 재정에 순이익을 가져오는 것으로 파악됐다.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도 회수 불가능한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정리하면서 부실률이 낮아지고 관리 비용이 절감되는 등 적시적인 채무조정은 금융 생태계 전반의 회복력을 높인다고 평가했다.
물론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짙다. 이에 따라 이번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에서는 증권사 보유 등 채무발생원인이 투자목적이 명백한 채권 등은 매입대상에서 제외하고, 은닉재산 등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는 등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캠코의 역할도 채무조정·회수에 그치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최우선 가치에 두고, 취약층의 경제적 재기를 돕는 것 또한 우리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배드뱅크는 결코 무책임한 빚 탕감이 아니다. 생계조차 막막한 사회구성원이 절망의 강에서 건널 수 있도록, 우리가 내민 배려의 손길이자 최소한의 디딤돌이며 국민경제 회복의 시발점이다.
정정훈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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