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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에 몸 단 트럼프, 만나기도 전에 푸틴한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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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으로 분장한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 지도를 찢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이곳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푸틴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를 팔아넘기지 말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14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으로 분장한 활동가들이 우크라이나 지도를 찢은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이곳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푸틴과의 회담에서 우크라이나를 팔아넘기지 말 것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푸틴 대통령에게는 큰 승리다.”(뉴욕타임스)



“이번 (미-러) 정상회담은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트럼프는 푸틴이 전쟁을 끝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만, 푸틴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워싱턴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승자는 푸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냈다’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고 싶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갈망이 뚜렷이 드러난 데다, 지금까지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를 고립시켜 온 제재 중심 전략을 미국이 먼저 유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면 러시아는 전쟁 피해 당사자인 우크라이나와 주변 국가인 유럽을 제치고 미국과 단둘이 만나며 ‘두 강대국’의 모습을 연출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는 불확실하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대러 추가 제재보다, 푸틴과의 직접 회담을 통해 단기간 내 승부를 보겠다는 계산이다. 엡스틴 의혹 논란, 상호관세 여파로 인한 물가 상승 압박 등 국내 정치에서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도 당장의 ‘정치적 성과’가 절실하다. 비비시와 뉴욕타임스 등은 트럼프가 회담에 나선 계기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은 개인적 욕구와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휴전을 끌어내기 위해 경제 제재 일부 완화나 북극 해협 등에서의 경제협력 확대 등을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미끼’도 던졌다고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분쟁이나, 캄보디아-타이 분쟁 때도 중재를 자처하며 각 나라들로부터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하겠다는 발언을 받아냈다. 인도와 사이가 나빠진 것도, 인도-파키스탄 분쟁 중재자를 자처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을 인도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워싱턴포스트)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는 노벨평화상 심사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 재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상을 받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반면 푸틴으로선 서두를 이유가 없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장기소모전이 될수록 동원력이 큰 러시아가 유리하다. 2022년 이스탄불 협상 때보다도 더 타협 유인이 적다. 푸틴은 그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4개 주에 대한 완전 할양을 요구해온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최근 휴전 조건으로 전략적 요충지인 도네츠크주 전체를 내놓을 경우 러시아가 점령한 일부 영토와 교환할 수 있다며 얼핏 한발 물러선 듯 보이는 제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무력화하고 친러 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푸틴의 최종 목표로 풀이된다. 최근 러시아 내에선 우크라이나 방어선이 이대로면 향후 2~3개월 안에 붕괴될 것으로 본다는 보도가 나왔다. 푸틴은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러면 푸틴은 왜 굳이 지금 트럼프와의 만남에 응했을까. 휴전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한 트럼프의 ‘분노’가 러시아를 향하는 것을 피하면서 유리한 현 전황을 그대로 끌고 가려 한다는 분석이 대다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까지 휴전을 약속하지 않으면 러시아 등에 보복하겠다며 이례적인 외교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회담 이야기가 나오면서 러시아 석유 등에 대한 경제 제재 위협은 일단 묻힌 상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었던 처지를 해소하고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논의로 한발 나아가는 효과도 거뒀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뒤 국제적 비난에 직면한 푸틴 대통령과 만난 서방 지도자는 지금까지 슬로바키아, 헝가리 단 두 곳에 불과했다. 라이호르 니즈니카우 핀란드 국제문제연구소장은 “푸틴 대통령은 (통보받은) 제재를 받는 대신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결과가 어떻든간에 엄청난 승리”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희토류나 에너지 협력, 북극 해협 개발 투자 문제 등을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러 경제 협력으로 돌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2월 만료되는 핵군축 조약인 뉴스타트(New START·미러 핵무기 감축 협정) 갱신 제안을 꺼내들 수도 있다. 카네기 러시아 유라시아 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푸틴 대통령의 목표는 우크라이나 정전 협정이 아니라 러시아의 제안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며,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려는 전술적 책략”이라고 짚었다.



만약 트럼프가 우크라이나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으로 덜컥 푸틴과 종전에 합의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거부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트럼프와 우크라이나·유럽 사이는 멀어지게 된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는 트럼프가 지금까지 전쟁을 끝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전가하고 싶어하며,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짚었다.



두 지도자 간 일대일 협상에서 트럼프가 우위에 서본 적 없다는 점도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018년 7월 핀란드 헬싱키 회담 때 푸틴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순응하며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가 국내에서 큰 반발에 직면했다. 가디언은 “헬싱키의 교훈은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을 단둘이 한 공간에 두는 것은 예측할 수 없으며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라고 썼다.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소련 정보기관(KGB)에서 훈련받은 푸틴은 침착한 모습으로 늘 그랬듯 트럼프를 조종하려 할 것”이라며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보좌진이 준비해 준 자료도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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