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니와 미스터 크리스 첫 韓 공연을 앞둔 연습 현장/고승희 기자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5명의 해니와 15명의 크리스가 춤을 춘다. 때론 혼자가 되고, 때론 두 명씩 짝을 짓는다. 강력한 자기장이 돼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보이지 않는 단단한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둘은 때론 하나의 몸이 돼 서로를 지탱한다. 해니가 손을 뻗으면 크리스가 그 손을 잡고 쓰러지려던 아슬한 몸을 일으킨다. 또 다른 해니는 허리를 구부린 크리스의 등에 등을 맞대고 빙그르르 돌며 시간을 늘린다. 모든 순간은 여운을 남긴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다가도 몸이 멈춘다. 삶의 시간마다 망설이고 고민하는 순간들이 올라퍼 아르날즈의 ‘리멤버’에 맞춰 흐른다. 저마다가 보내온 날들의 기억이었다.
최근 서울 합정동 지하의 작은 연습실.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의 무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수십 개의 운동화가 쌓였다. 장면 장면 떨어뜨려 연습하던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70분 공연을 위한 첫 번째 리허설을 시작했다.
안무가 해니와 크리스의 표정이 밝았다. 그는 “우리 내면의 이야기, 우리 안의 무수히 많은 생각과 페르소나를 서른 명의 무용수가 표현한 모습”이라며 “마지막엔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싶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해니의 이야기에 크리스는 조금 더 차분하게 돌아봤다.
“그동안엔 퍼즐 조각이 하나하나 떨어진 기분이었는데, 마침내 전체 그림이 연결된 것 같아요.” (크리스)
‘OO-LI 우리’(8월 16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두 젊은 안무가가 만났다. 해니(31, Haeni Kim)와 미스터 크리스(27, Mr.Kriss). 두 사람은 이 무대를 통해 서로의 ‘닮은 구석’을 찾아내고, 저마다의 내면에 숨은 또 다른 ‘나’를 만난다. 세종문화회관 여름 축제 ‘싱크 넥스트 25’(Sync Next 25)를 통해서다.
해니(31, Haeni Kim)와 미스터 크리스(27, Mr.Kriss) [세종문화회관 제공] |
‘우리’라는 제목이 가지는 의미가 다양하다. 최근 마포구 합정동의 한 연습실에서 만난 해니는 “우리라는 제목을 짓고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더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와 한글을 병기하는 ‘우리’는 ‘너와 나’의 ‘우리’(WE)이자, 안과 밖의 경계인 ‘우리’(Cage)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해니는 “바운더리 이자 커뮤니티”의 의미라고 했다.
“말장난처럼 동음이의어를 크리스에게 알려주다가 ‘우리’를 꺼내자 좋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우리(cage) 안에 갇힌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크리스는 특히 시각적 이미지를 마음에 들어 했어요.”
체코 출신 크리스는 현지에서 실험적 댄스배틀 ‘코레스폰댄스 배틀’(KoresponDance Battle) 주최자로이자 카일리 미노그, 아이 웨이웨이 등 팝아트스트와 협업하고 있는 그는 포브스의 ‘30세 이하 30인’(30 Under 30, 자신의 분야에서 놀라운 업적을 세운 30세 미만의 파워 리더)에 선정된 댄서이자 비주얼 아티스트다. 해니가 ‘우리’를 제안하자, 크리스는 글자 모양을 본 뒤 떠오르는 이미지를 순식간에 10여개를 그려 넣으며 안무 아이디어의 씨앗을 뿌렸다.
크리스는 “우리라는 표기는 시각적으로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 단순하고 간단한 명칭을 좋아한다”며 “관객들이 봤을 때 ‘무슨 의미일까’ 질문하는 순간도 우리가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번 무대를 위해 공개 오디션을 통해 28명의 무용수를 뽑았다. 이들은 14명씩 각각 해니와 크리스가 돼 두 사람의 다양한 내면을 표현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해니와 크리스의 또 다른 자아인 것이다.
오디션에선 컨템퍼러리, 힙합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무용수들이 선정됐다. 해니는 “걸어들어오는 순간부터 얼마나 빛날지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며 “각자의 배경을 떠나 지금 이순간에 빛나는 사람들을 뽑았다”고 했다. 크리스는 “각자 어떤 장르를 기반으로 춤을 췄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이 누구인지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해니와 미스터 크리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여섯 살에 발레로 춤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해니는 팝스타 어셔, 에스파 등과 협업하며 컨템퍼러리 안무가로 이름을 알렸다. 주목받는 젊은 안무가들의 만남에 국내외 댄서들 40명이 지원했다. 독일 출신으로 한국에서 활동 중인 여성 댄서 야니는 “해니와 크리스를 전부터 알고 있어 이 프로젝트가 상당히 재미있을 것 같았다”며 “전 힙합 기반 춤을 추는데 대부분 무용수가 현대무용 기반이라 걱정했는데 막상 와보니 장르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어를 상당한 실력으로 소화하는 야니는 연습 현장에서도 해니와 크리스를 돕는 스테이저처럼 두 사람과 댄서들 사이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안무 스타일은 정반대다. 해니는 “내가 안정적이고 통제적이라면 크리스는 동물적이다”라며 “그는 자신을 컨트롤하지 않은 채 동물적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가 같아 무용수를 뽑을 때부터 지금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긍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 사람 안에 많은 종류의 자아가 있기에 정적이다가도 동적이고, 때론 시끌벅쩍 하다. 흥미로운 것은 장장마다 제목에 담긴 우리의 의미가 춤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사이퍼 장면은 가장 동적이면서 30명이 한 번에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다.
“어린 시절 한국 브레이킹이 큰 영감을 줬다”는 크리스의 장기가 발휘된다. 해니와 크리스 안의 무수히 낳은 페르소나들이 하나씩 등장해 엄청난 에너지로 춤을 춘다. 즉흥에 기반한 장면이기에 순서가 정해지지도 않았다. 타이밍이 엇갈려 동시에 두세 명이 나오려고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눈짓과 미소로 춤꾼들은 서로에게 양보한다.
두 사람은 지인을 통해 지난해 처음 만났다. 크리스는 첫 만남을 떠올리며 “밤늦게 한국에 도착해 김밥천국에서 처음 만났다”며 “해니가 처음 본 저에게 마음을 활짝 열었다. 전에 본 적도 없는데 우리 집에 빈방 있으니 가 있으라 했다”며 웃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해니도 “제가 워낙 유리 같은 사람”이라며 “아파트 비밀번호를 알려줬는데 김밥천국에서 만나게 된 것은 크리스가 문 여는 방법을 몰라서였다”며 웃었다.
세계 무대에서 먼저 주목받은 해니와 크리스는 비슷한 시기 각자의 모국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자리가 마련됐다. 해니가 약 70분 분량의 규모로 공연을 창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
세계 무대에서 먼저 주목받은 해니와 크리스는 비슷한 시기 각자의 모국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자리가 마련됐다. 해니가 약 70분 분량의 규모로 공연을 창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싱크넥스트’ 공연에 앞서 해니는 크리스와 함께 체코에서 이번 공연의 전초전 격의 무대를 올렸다. 크리스는 “체코 공연은 댄서 네 명이 꾸몄다면 이번 공연은 댄서만 해도 8배로 늘었다”며 “그때의 공연이 단조로운 흰쌀밥이었다면, 이번 한국 공연은 보다 다양한 맛이 섞인 김치볶음밥”이라고 했다.
한국에서의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올린 과정을 통해 두 사람은 저마다의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크리스는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댄스 언어에 대해 배우게 됐다”며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알게 되며 나만의 춤의 언어를 찾게 되는 과정이 되고 있다”고 돌아봤다. 크리스는 의욕과 열정에 앞서 무수히 많은 일을 해내려는 해니에게 숨표가 됐다. 해니는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크리스가 그때마다 일을 차근차근 해내도록 도와줬다. 크리스와의 작업을 통해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춤의 세계’도 시간에 따라 많은 변화가 일었고, 지금은 지금의 ‘트렌드’가 있다. 두 사람은 “춤의 트렌드는 있지만, 우리는 트렌드가 무엇인지 정확히 표현하지 못할 만큼 잘 모른다”며 “우리가 하는 춤이 트렌드가 되면 재밌겠다”며 웃었다. 그 과정에 있는 이 무대가 관객에겐 수용과 공감의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우리는 우리예요. 우리 두 사람의 대화로 시작했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무대여야 진짜 ‘우리’가 될 것 같아요. 이 무대는 남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친구, 연인의 이야기이기도 해요. 무대를 보며 본능적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본능적으로 자기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아요.” (해니)
“이 무대가 사람들을 춤추게 하면 좋겠어요. 서로의 눈을 맞추고 안아주는 강력한 순간을 바라보며 그것이 일상 속의 삶으로 이어진다면 좋겠어요. 집으로 돌아갔을 때 서로를 의미 있게 바라보며 한 번씩 안아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크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