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100년 가까이 애니메이션 왕국의 왕좌를 지켜온 디즈니. 그 아성에 균열을 내는 도전장이 날아왔다. 주인공은 ‘겨울왕국’이 아닌 ‘K팝 데몬 헌터즈’(케데헌)다. K팝의 폭발력과 뮤지컬의 감성을 한 데 담아, 세계 최대 온라인동영상플랫폼 넷플릭스가 던진 승부수가 전 세계를 흔들고 있다.
“디즈니를 이기겠다”던 선언, 현실로?
“가족 애니메이션에서 디즈니를 이기겠다.”
리드 헤이스팅스 당시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2020년 내뱉은 말은 그때만 해도 허황된 꿈처럼 들렸다. 1937년 ‘백설공주’부터 ‘신데렐라’, ‘토이 스토리’, ‘겨울왕국’까지… 디즈니는 세대를 넘어 전 세계 어린이와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아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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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헌트릭스(사진=넷플릭스) |
“디즈니를 이기겠다”던 선언, 현실로?
“가족 애니메이션에서 디즈니를 이기겠다.”
리드 헤이스팅스 당시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가 2020년 내뱉은 말은 그때만 해도 허황된 꿈처럼 들렸다. 1937년 ‘백설공주’부터 ‘신데렐라’, ‘토이 스토리’, ‘겨울왕국’까지… 디즈니는 세대를 넘어 전 세계 어린이와 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아왔기 때문이다.
5년 뒤, 그 선언을 현실로 만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6월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즈’다. 세계적인 K팝 걸그룹이 악마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뮤지컬 어드벤처. 영화는 음악으로 악령을 봉인하는 걸그룹 ‘헌트릭스(Huntr/x)’의 모험을 그린다. 하지만 그들의 위치와 팬들의 마음을 위협하는 존재가 등장한다. 매혹적이지만 악마의 세력인 K팝 보이밴드 ‘사자 보이즈’다. 이 대립 구도는 단순한 선악 대결을 넘어, 음악과 팬덤의 힘, 그리고 진정성의 가치를 담았다.
화려한 노래와 춤, K팝 팬 문화가 절묘하게 녹아든 이 작품은 공개 두 달도 안 돼 1억8400만 뷰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역대 애니메이션 1위, 전체 영화 순위 2위다.
OST ‘골든’, 빌보드 핫100 정상·英 싱글차트서도 1위
흥행은 음악 차트로 이어졌다. OST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핫 100’ 정상에 올랐다. K팝 연관곡 중 아홉 번째 1위곡이며, 여성 보컬 중심 곡으로는 처음이다. 핫100은 미국 내 라디오 방송 횟수, 음원 판매량 및 스트리밍 실적 등을 종합해 한 주 동안의 최고 인기곡을 가리는 차트다. 북미 시장에서 대중성 확보의 주요 지표로 평가된다.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에서도 13년 만에 1위(싸이 ‘강남스타일’ 이후)를 차지했다. 뮤직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는 4600만명을 넘겼고, 글로벌 앨범 차트 정상을 대부분 지켰다. 빌보드에 따르면 미국 라디오 방송 횟수는 최근 70% 넘게 급증했다. 영어와 한국어 가사가 함께 들어간 K팝 곡이 이 정도의 라디오 에어플레이를 기록하는 건 드문 일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건 2022년 디즈니 ‘엔칸토’의 ‘입에 담지 마 브루노’(We Don’t Talk About Bruno)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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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사자보이즈(사진=넷플릭스) |
“부르기 어려운 노래일수록 더 도전한다”
경쾌하고 힘이 솟는 듯한 이 곡은 K팝 작곡가 김은재, 한국계 미국인 가수 오드리 누나(Audrey Nuna), 싱어송라이터·래퍼 레이 아미(Rei Ami)가 함께 불렀다.
‘골든’은 제작 과정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곡이었다. 매기 강 감독과 크리스 애펠한즈 감독은 음악을 스토리의 핵심 축으로 삼으며, 업계 전문가인 김은재를 보컬 프로듀서이자 송라이터로 기용했다. 강 감독은 “김은재가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음을 모두 썼다”며, 특히 ‘골든’이 “가수의 모든 역량과 에너지를 쏟아붓는 느낌”을 담길 원했다고 했다. 그는 “부르기 어려운 노래일수록 사람들이 더 도전한다”며 “‘골든’이 그렇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전통 광고 대신 K팝 특유의 ‘참여형 팬덤’
흥행 비결은 단순히 넷플릭스 플랫폼 파워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전통 광고가 아니라 SNS 효과를 톡톡히 봤다. 영화 속 가상 그룹 ‘헌트릭스’처럼, 현실에서도 팬들이 직접 영화를 홍보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에는 댄스·보컬·연주 커버, 립싱크 영상이 쏟아졌다. 실제 K팝 아이돌들도 직접 안무와 노래를 재해석해 올렸다. 주요 장면과 대사를 활용한 밈(Meme)과 패러디도 빠르게 확산했다. K팝 특유의 ‘참여형 팬덤’ 문화가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버니 조 DFSB 콜렉티브 대표는 “바이럴 영상, 댄스 챌린지, 팬 커버 영상이 K팝 그룹의 활동 패턴 그대로였다”며 “독창성과 진정성이 자발적 확산을 불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후속작·머천다이즈로 금맥 캐기
넷플릭스는 발 빠르게 ‘골든’의 금맥을 캐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영국에서 ‘싱어롱’ 상영회를 열고, 머천다이즈 상품은 187종을 선보였다. ‘오징어 게임3’보다 많다. 후속작 2편과 단편, 무대 뮤지컬도 검토 중이다. 브랜든 카츠 그린라이트 애널리틱스 전략 디렉터는 “넷플릭스가 처음 거머쥔 대형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라며 “디즈니처럼 지적재산권(IP)을 확장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넷플릭스가 이 작품을 한 번의 흥행으로 끝낼지, 아니면 ‘겨울왕국’처럼 시대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키울지. 전 세계 팬들은 이미 ‘렛잇고(Let It Go)’ 대신 ‘골든’을 흥얼거리며 답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