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바이마르에 있는 안나 아말리아 도서관의 로코코 홀. 괴테는 이곳에서 세계문학에 관한 몇가지 연구를 진행했다. 위키미디어 |
문학은 자원 추출에 의지하는 우리의 생활 방식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기후위기에 책임이 있다. 세계문학 최초의 명작이라 할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해 모든 텍스트는 환경적 읽기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문학사 전체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오늘날 환경 변화보다 중요한 문제는 없으므로 문학은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런 과감한 주장을 내놓은 이는 미국 하버드대 영문학과 비교문학 교수 마틴 푸크너다. 한국에는 ‘글이 만든 세계’와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같은 책들이 번역 출간되어 있는 이다. 그의 새 책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은 기후위기 시대에 세계문학을 다시 읽고 위기 해소에 보탬이 될 새로운 이야기를 쓰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노턴 세계문학 선집’ 편집자이기도 한 푸크너는 그 경험을 살려 서구문학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의 문학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기후변화가 초래한 행성적 위기와 문학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일러준다.
소책자에 가까운 짧은 분량의 책에서 개별 작품들에 대한 본격 비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길가메시 서사시’에 대한 그의 환경적 읽기를 통해 다른 작품들을 독해하는 데 필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구약성경의 노아 이야기를 닮은 대홍수 장면이 나온다. 구약보다 1천년 가까이 앞선 이 작품에서 노아에 해당하는 우트나피쉬팀은 거대한 배를 만들어 동물 무리와 자신의 가족을 홍수로부터 구한다. 메소포타미아인들은 강의 주기적인 범람을 막고자 정교한 운하 체계를 만들었고 그 사실은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언급된다. 그러나 “대규모 공사로 환경 통제를 시도한 최초의 사례”인 운하로도 홍수를 막지는 못했고, 그런 점에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런 형태의 오만한 도전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 있다는 게 푸크너의 주장이다.
길가메시는 자신이 다스리는 도시 우루크를 에워싼 성벽을 재건했으며, 야생의 존재 엔키두를 유혹해 도시 생활로 끌어들인 뒤 그와 함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삼나무 숲을 지키는 괴물 훔바바를 제거하는 모험에 나선다. “신비한 숲을 모험하고 훔바바와 겨룬 일은 도시 건설에 필수적인 자원을 얻으려고 힘을 쏟은 벌목 원정”이었는데, 이 두 침입자를 벌하기로 한 신들의 결정으로 결국 엔키두는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그로 인해 충격과 혼란에 빠진 길가메시는 도시를 떠나 야생의 세계를 방황한다. 결론적으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의 정착 생활, 생태를 파괴하는 길로 들어선 우리의 생활 방식에 관한 최초의 중요한 기록”이며, 그런 점에서 “성벽 안 도시 생활을 지탱하는 것은 풍부한 자원을 갖춘 성벽 밖 환경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새로운 읽기가 필요하다”고 푸크너는 강조한다.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그는 귀향길의 오디세우스가 맞닥뜨린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무리가 꾸리는 대안적 형태의 농업과 상업에 주목한다. “그들은 신들에게 의탁한다,/ 그래서 씨앗을 심지 않고 쟁기질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보리며 밀이며 무성한 포도 넝쿨까지/ 그곳에서는 모두 제우스 신이 내린 비를 맞고 잘 자란다.” 이 작품에서도 농업 방식을 기준 삼아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관점이 드러나며,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역시 도시 생활과 농업의 상호의존적 관계를 보여준다는 게 푸크너의 생각이다. 그는 더 나아가 남아시아의 ‘판차탄트라’와 ‘자타카 이야기’, ‘천일야화’, ‘이솝 우화’ 같은 동물 우화들에서도 “야생의 존재를 길들이고 인간의 사회성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다양한 방식”을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길가메시 이야기’에서는 길가메시의 전임자인 우루크 왕 엔메르카르와 이웃 나라 아라타의 왕이 전령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위협하며 힘을 겨루는데, 전령이 말로 전하는 엔메르카르의 협박에는 끄떡도 않던 아라타의 왕이 점토판에 적어 보낸 경고에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결국 항복했다.” 푸크너는 이 이야기가 “글쓰기의 힘을 강조”하며 “글쓰기가 기록 관리와 최초의 국가 관료제 확립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짚는다. 글로 옮겨진 이야기들은 “영토 확장의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최소한 영토 확장의 혜택을 받았”으며, 그런 점에서 “글쓰기 역사의 고찰은 정착 생활과 자원 추출에 대한 문학의 공모를 가늠해볼 근거를 제공한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비롯한 고전 작품들의 환경적 읽기를 거쳐 푸크너는 세계문학 개념을 처음 제시한 괴테와 ‘공산당 선언’에 관한 논의로 나아간다. 괴테는 국민문학의 종언과 세계문학의 도래를 주창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역시 산업과 상업의 세계화 흐름에 발맞춘 세계문학의 등장을 예언했다. 푸크너는 이들의 세계문학 논의를 이어받되 “세계문학 개념의 환경적 측면을 전면에 내세워 산업 시대에 가속화된 자원 추출의 역사에 결부시키는 것”을 우리 시대의 과제로 꼽는다. 기후위기가 단일 국가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전 지구에 걸치는 만큼 그에 대한 문학의 대응 역시 거시적이며 행성적 차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 연구를 국민 문학의 분과에 가두고 작은 단위의 물음과 더 제한적인 결론들에 몰두하”는 방식으로는 기후위기에 제대로 맞서기 어려우며, 거시적 관점과 ‘거대 서사’가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기후변화는 하나의 종으로서, 집단적 행위자로서 인간의 문제다. (…) 그 해결 역시 집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집단적 행위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공산당 선언’이 새로운 집단 행위자로 프롤레타리아를 내세웠다면 푸크너는 기후 난민으로 대표되는 “불안정한 정착민”에 주목한다. 게다가 생태 위기는 인간만 위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비인간 종 역시 기후 서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해야 한다. 그와 관련해 미국 작가 리처드 파워스의 소설 ‘오버스토리’에서 나비와 버섯 종들을 행위자로 삼은 서사적 실험, 그리고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 등을 참조할 만하다고 그는 소개한다. 푸크너가 시종 긴요하게 참조하는 ‘공산당 선언’의 메아리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도 울려 퍼진다. “이제 전 세계의 이야기꾼들이 단결해야 할 때가 아닐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변화하는 행성 지구를 위한 문학 l 마틴 푸크너 지음, 김지혜 옮김, 문학과지성사, 1만3000원 |
사자를 길들이는 길가메시의 동상.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대학 교정에 세워져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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