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임기는 내년 8월까지입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여당의 사퇴 요구에도 남은 임기를 채우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방통위법(제7조)이 위원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 위원장을 강제로 교체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런 일은 지난 정권에서도 일어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과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여간 자리를 지켰다.
당시 여당(국민의힘)은 의석 수가 105석에 불과했지만, 지금 여당(더불어민주당)은 166석의 과반이 넘는 의석을 보유하고 있다. 여당에 협력하는 범여권 정당의 의석 수는 182석에 달한다. 방통위원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방통위를 폐지하고 새로운 부처를 만들 힘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지난 달 25일 민주당(김현 의원)은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방송통신업계는 아직 당론으로 최종 확정된 건 아니지만, 거대 의석을 가진 여당이 추진한다면 조만간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방통위를 대체할 새 부처에 다른 정부 부처에 흩어진 방송통신 진흥 정책 기능이 추가될 전망이다.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에만 국한됐던 방통위의 진흥 정책 기능이 과기정통부가 담당했던 유료방송(케이블TV, 인터넷방송(IPTV), 위성방송)까지 확장되고, 과기정통부와 문화체육관광부에 흩어져있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진흥 정책 기능도 신설 부처로 통합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우려가 만만치 않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합의제 기관 특성상 규제와 진흥 정책 기능이 한 곳에 모이면 정치적인 대립 상황에 따라 신속하고 효율적인 방송통신 진흥 정책 수립에 차질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라고 했다. 방통위를 대체해 기능이 확대된 새 부처는 여대야소 상황에서 신속한 정책 결정이 가능하지만, 다시 여소야대 상황에 놓일 경우 지금의 ‘식물 방통위’ 전철을 밟게 되고 부처의 기능 정지가 지금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합의제 기관의 맹점이기도 하다. 방송통신 정책 수립과 규제에 있어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좋은 의도로 합의제를 채택했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치적 대립이 격화될 경우 부처의 기능이 정지되도록 하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이진숙 위원장은 취임 이틀 만에 민주당으로부터 탄핵을 당했다. 이 위원장이 2인 체제에서 공영방송 이사진을 교체했다는 것이 빌미가 됐다. 그런데 5명의 방통위 위원 중 3명이 결원이었던 이유는 민주당이 국회 의결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위원장 1인 체제로 모든 기능이 정지된 식물 방통위로 전락했다. 이는 합의제의 부작용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다.
방송통신 진흥 정책 기능은 독임제(장관처럼 1인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를 둔 체제) 형태의 부처를 별도로 만들어 이관하고, 규제 기능만 합의제로 분리시키는 게 합리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은 합의제의 맹점을 고려한 합당한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정책 수립은 속도가 생명이고, 규제는 균형을 갖춘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통위 폐지 후 새로운 거대 부처가 출범해 또 다시 ‘식물 방통위’가 반복된다면 국내 미디어 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새 정부가 만들어갈 방송통신 정책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이유다.
심민관 기자(bluedrag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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