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행복 공화국'으로 가는 길, 국가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지금 행복하십니까?"

많은 국민이 이 질문 앞에서 망설인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월급은 생활비로 빠져나가 버린다. 내 집 마련은 멀어지고, 아이를 키우는 부담은 커진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지만, OECD 행복지수는 38개국 중 33위다. 경제 성장과 국민 행복이 비례하지 않는 '행복의 역설' 속에서, 우리는 국가의 대전환이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지난 60년,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기적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도권 과밀화, 지방소멸, 중산층 붕괴, 공동체 해체가 자리잡고 있다.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몰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 이상이 지방소멸 위험지역이 되었고, 현대인은 장시간 출퇴근, 높은 주거비, 과도한 교육비, 불안정한 노후로 삶의 여유를 잃었다. 우리가 꿈꾸던 선진국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경제성장률보다 '삶의 온도'를 높이는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 국민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행복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네 가지 혁신 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 혁명'. AI 시대에는 '어디서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서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파리의 '15분 도시', 바르셀로나의 '슈퍼블록'처럼 생활권 안에서 일·교육·문화·의료가 가능한 도시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노후 국가산업단지는 일·주거·여가가 결합된 '직주락(職住樂) 기업도시'로 재개발해 젊은 인재와 기업이 모이게 해야 한다. 교통 인프라도 압축이 필요하다. KTX 차량 교체와 선로 개량만으로도 서울-부산 90분, 서울-광주 60분 시대가 가능하다. 이로써 지역과 수도권을 오가며 사는 '듀얼 라이프'가 현실이 된다.

둘째, 지역을 살리는 '대학 혁신'. 대학은 지역의 핵심 엔진이다. 13개 혁신도시와 지방 대학을 연계해 지역 특화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해야 한다. 예컨대 원주는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과 연계한 AI 의료데이터 센터, 나주는 한전·전남대 전기공학과와 연계한 에너지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다. 전국 330여 대학을 기업도시형, 국가산단 지원형, 은퇴자 도시형으로 재편하고, 중국 칭화대·싱가포르 난양공대처럼 캠퍼스에 기업·연구소를 유치해 지역과 대학이 함께 성장하도록 해야한다.

셋째, 공동체를 회복하는 '마을 혁신'. 학교를 보육·체육·문화·공유오피스가 결합된 복합 커뮤니티 거점으로 바꾸어야 한다. 싱가포르, 핀란드처럼 마을이 통합된 생활·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인구소멸 위기 지역에는 '교육·의료 혁신 특구'를 지정해 원격의료와 AI 기반 교육을 전면 도입하고, 규제 완화로 새로운 서비스가 흐르게 해야 한다.

넷째, 성과로 평가받는 '정치 혁신'. 정치는 구호가 아니라 결과로 말해야 한다. OECD 삶의 질 지수, 부탄의 국민총행복(GNH) 지표를 토대로 '지역 삶의 질 성적표'를 만들고 매년 공개해야 한다. 성적에 따라 지방교부세를 차등 배분해 지자체 간 '삶의 질 경쟁'을 촉발시켜야 한다. 또한 현재 자문기구에 불과한 지방시대위원회를 법적 권한과 예산 조정 기능을 가진 국가균형발전 컨트롤타워로 격상해야 한다.

새 시대를 여는 결단. 대한민국은 경제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국민 행복은 여전히 바닥권에 머물러 있다. 이제 국가 발전의 패러다임을 물질 중심에서 삶의 질 중심으로, 수도권 집중에서 균형 발전으로, 경쟁 중심에서 협력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산업화의 열정, 민주화의 투혼을 넘어, 행복을 중심에 둔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는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제는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삶의 온도를 높이는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

이광재 전 국회사무총장.

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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