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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사만 되려는 ‘편집증적 서열화’… 이대론 중국 못 따라가" [이동현의 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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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인 한양대 중국통상학과 교수 인터뷰]
AI·로봇 등 첨단 기술 중국과 상당한 격차
64개 미래 첨단 기술 중 중국 53개 1위, 한국 0
의대 대신 공대 가는 중국, 혁신 기술 창업이 꿈
줄세우기 경쟁 심화한 한국은 과도한 안정 추구
AI시대 이후 주요국 국가 주도 성장 드라이브
기술 혁신, 대규모·장기 투자... 국가 역할 중요

편집자주

편애(偏愛)는 지독히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지극히 이타적이다. 박애가 실종된 시대 편애를 추적한다.


백서인 한양대 교수가 6일 경기 안산시 한양대 ERICA캠퍼스 교수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산=왕태석 선임기자

백서인 한양대 교수가 6일 경기 안산시 한양대 ERICA캠퍼스 교수연구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산=왕태석 선임기자


중국 항저우의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지난 1월 대형언어모델(LLM)에 기반한 생성형 AI ‘딥시크-R1’을 공개하자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놀라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때문이다. 생성형 AI 기술 개척자 미국 오픈AI가 챗GPT-4o 개발에 들인 1,388여억 원의 18분의 1 비용(약 77억 원)만으로 버금가는 성능을 구현했다.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로 AI 기술 혁신에 필수적인 엔비디아 H100과 같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능이 떨어지는 H800을 활용해 성과를 냈다.

미국과 AI 기술 격차를 단숨에 줄였다. 미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에 따르면 미중 간 AI 기술 격차는 지난해 1월 9.3%에서 지난 2월 1.7%로 좁혀졌다. 구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것에 빗대 중국 AI 기술의 ‘스푸트니크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기술 패권의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이란 의미다. 최첨단 혁신 기술의 불모지, 후진국으로 여겨졌던 중국이 추격자를 넘어 선도자로 올라선 것이다.

한국이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제조업 하청 국가 정도로 여겼던 중국이 미래 혁신 산업 분야에서 한국을 위협하거나 이미 추월했다는 위기감 탓이다. 충격과 공포라는 반응까지 나왔다. 하지만 백서인 한양대 중국지역통상학과 교수는 “지금 놀라는 게 더 놀랍다”고 지적한다.

백 교수에게 ‘제조업’과 ‘첨단 기술’ 두 글자는 삶을 관통하는 말이다. 중국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고 정체기를 겪으며 혁신 기술 선도국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중국 편에 서서 지켜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 때문이다. 한중 수교 2년 후인 1994년 중국 진출 제조업 1세대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간 덕이다. 제조업 심장이라 불리는 광둥성 포산에 살았고, 중국인 친구들과 중·고교를 다니며 비약적 성장 과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중국 최고 공대로 꼽히는 칭화대 공대에 진학해 정밀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첨단 기술에 ‘미친’ 중국 학생들과 경쟁했다. 백 교수는 6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까지는 중국을 과소평가해 문제였는데, 앞으로는 중국을 너무 과대평가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지난 1월 프랑스 툴루즈에서 선보인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로고(왼쪽)와 미국 오픈AI의 챗GPT 로고가 스크린에 함께 표시되어 있다. 딥시크는 사용자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한다는 우려에도 출시 일주일 만에 애플 앱 스토어 무료 앱 다운로드 순위에서 챗GPT를 2위로 밀어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월 프랑스 툴루즈에서 선보인 중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딥시크 로고(왼쪽)와 미국 오픈AI의 챗GPT 로고가 스크린에 함께 표시되어 있다. 딥시크는 사용자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한다는 우려에도 출시 일주일 만에 애플 앱 스토어 무료 앱 다운로드 순위에서 챗GPT를 2위로 밀어냈다. AFP 연합뉴스


"중국 첨단 기술, 이미 한국 넘어선지 오래... 우리가 외면한 것"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넘어섰다고 보나.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딥시크가 나오면서 이제야 관심을 가져서 그렇지 메모리반도체·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LNG(액화천연가스)운반선 등 일부를 제외하면 기술적으로 중국이 한국을 넘어선 지 오래다. 특히 AI·로봇 분야는 격차가 상당하다. 로봇 산업의 경우 중국에는 유니트리 같은 기업이 100개 가까이 있다. 미국과 비교해도 원천 기술 측면에서는 아직 차이가 나지만 제약·바이오, 양자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미국과의 격차를 좁히고 있다. 적어도 첨단 제조업 분야만큼은 우리가 세계 최고라는 말은 이제 완전히 틀린 얘기다. 중국을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있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우리는 왜 여태 중국이 기술 혁신을 이루고 있다는 걸 몰랐나.

“중국의 혁신을 무시하거나, 외면하거나, 어렴풋이 아직은 멀었다 안도한 결과다. 현실적으로 한국은 글로벌 산업적 측면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경쟁국 관계지만, 중국의 산업·기술을 연구하는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 중국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평가를 내려왔다. ‘차이나 디스카운트’다. 30년 전 중국에 진출한 제조업 1세대들이 은퇴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이을 2세대는 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정부, 학계는 물론 현장 전문가들도 찾기 힘드니, 중국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되지 않는 것이다.”


1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30회 FIRA 로보월드컵 앤 써밋 2025 한국’에 출전한 참가자들이 경기에 앞서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FIRA 로보월드컵 앤 써밋’에는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러시아, 중국, 대만, 이란, 브라질 등 전 세계 17개국 900여 명의 로봇 유망주들이 참가해 직접 프로그래밍한 로봇으로 열띤 경쟁을 펼친다. 대구=뉴시스

1일 대구 북구 엑스코에서 열린 ‘제30회 FIRA 로보월드컵 앤 써밋 2025 한국’에 출전한 참가자들이 경기에 앞서 로봇을 점검하고 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FIRA 로보월드컵 앤 써밋’에는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러시아, 중국, 대만, 이란, 브라질 등 전 세계 17개국 900여 명의 로봇 유망주들이 참가해 직접 프로그래밍한 로봇으로 열띤 경쟁을 펼친다. 대구=뉴시스


64개 미래첨단 기술 분야 단 하나도 1위에 오르지 못한 한국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가 64개 미래 첨단 기술 분야에서 국가별 경쟁력 순위를 평가한 ‘글로벌 핵심기술 경쟁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단 하나도 1위에 오르지 못한 반면 중국은 AI, 우주·항공, 배터리 등 53개 기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유전공학·양자기술 등 11개 분야에서 1위에 오른 미국보다 많은 숫자다. 한국은 26개 기술에서 상위 5위에 들었지만, 시장 점유율 측면에서 1, 2위를 다투는 미중과 격차가 컸다. ‘기술 강국’이라 부르기 민망한 결과다.

백 교수는 리커창 전 총리가 국가 주도 혁신 전략인 ‘쌍창 정책’을 제안했던 2014년을 중국 혁신기술 도약의 변곡점으로 평가했다. 당시 중국은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했고, 잠재성장률 저하에 따른 경제구조 전환 압박을 받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창업하고, 모두가 혁신에 참여하자’는 슬로건에 맞춰 중국 정부는 대학생·청년·귀국 유학생 대상 창업 생태계 조성에 나섰고,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5년 후 중국 대학 졸업생 창업률은 8%로 우리나라(0.8%)보다 10배 컸고, 창업 의향을 가진 비율도 89.8%로 한국(17.4%)보다 5배 이상 높았다. 기업가치 10억 달러가 넘는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만 80개를 배출했다.

-중국 공대가 단순 교육기관을 넘어 중국 기술 혁신의 메카가 됐다.

“칭화대도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도쿄공대, 싱가포르국립대 등에 비해 뒤처져 있었다. 혁신적 커리큘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2012년 이후 무서운 속도로 변했다. 칭화대에 창업인큐베이터 ‘엑스랩’이 만들어지고, 기업가 정신·혁신 등을 가르치는 학과가 생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년 200개씩 스타트업이 쏟아졌고, 이런 성과가 쌓이고 쌓이면서 유니콘을 넘어 기업가치 100억 달러가 넘는 ‘데카콘 기업’이 탄생했다. AI 기술을 활용한 세계 최대 얼굴 인식 플랫폼 기업 ‘메그비’의 시작이 엑스랩이다.”


-창업과 혁신을 강조한다고 해서 절로 성과가 나는 건 아니지 않나.

“국가적으로 기술 혁신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면, 혁신·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의 기대 수익을 높일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설계해 줘야 한다. 혁신창업이 모두 성공할 순 없다. 정부가 위험을 부담해 줘야 한다. 앞으로 양자기술이 중요하다고 하니 여기저기 양자기술 관련 대학원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들이 졸업한 뒤 갈 데가 없다. 삼성전자·현대차·LG 등 민간기업에 양자기술 관련 팀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없지 않나. 졸업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는 길밖에 없고, 애써 키운 기술 인재가 유출되는 것이다. 그래 놓고 양자기술 인재가 필요하니 애국 정신으로 한국으로 돌아와라,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단장 자리를 주겠다 이렇게 한다.”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의 한 장면. KBS 제공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 2부 '의대에 미친 한국'의 한 장면. KBS 제공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이라는 말이 화제다.

“중국에선 공대를 나오는 게 기대 수익이 가장 크니까 공대로 가는 것이다. 일정 수준 이상 공대를 졸업해 빅테크 기업에 취업하면 의사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알리바바의 대졸 엔지니어 초봉이 7,000만~8,000만 원 정도다. 개인적으로 의학 분야에 인재가 몰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 의대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희소·난치병을 치료하는 의생명과학 기술 혁신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가장 뛰어난 의대생이 피부과로 가려 한다. 의대생이 서울대 의대를 가기 위해 재수·삼수를 하는 건 말 그대로 ‘미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기대 수익이 높으니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나.”

-개개인으로서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 아닌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이 구체적 목표만 다르지 모두가 ‘안정추구형’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이다. 최상위 성적을 받는 학생은 의사가 되고 싶고, 다음은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에 가고, 그다음은 튼튼한 중견기업에 가는 게 목표라고 말한다. 그런데 취업을 하면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면 ‘워라밸’을 지키겠다는 것 외에 답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과도한 줄세우기 경쟁에 노출되다 보니, 정작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경쟁을 시작해야 할 20세가 되면 경쟁에 질려버리는 듯하다. 문과생은 변호사가 되려 하고, 이과생은 의사가 되려는 ‘편집증적 수직계열화’ 사회가 됐다. 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이 사라지면서 청년들의 도전 정신도 없어졌다. 혁신과는 멀어지는 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한·중 10대 부자

한·중 10대 부자


중국 10대 부자, 공대·기술 창업·자수성가 공통점


백 교수는 ‘직업별 기대 수익’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중국의 경우 10대 부자 대부분이 공대 출신으로, 혁신 기술 창업을 통해 자수성가했다. 중국에서 공대로 인재가 몰리고, 기술 혁신이 붐이 일고 있는 배경으로 꼽힌다. 이 같은 창업생태계를 만든 중국 정부의 역할이 컸다는 게 백 교수 평가다. 적극적 재정 지원 등을 통해 벤처캐피털 등 혁신 금융을 활성화해 실패에 따른 리스크를 줄여주니 도전에 대한 부담이 적다. 과학기술 분야 최고 학자를 ‘원사’로 지정해 한 해 많게는 1조 원 규모의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맡기는 원사제도, 해외 고급 인재 유치를 위해 기본 연봉의 최대 5배와 연구비의 최대 100배 조건을 내걸고 2008년부터 추진한 ‘1000인 프로젝트’ 등도 혁신의 기반이 됐다고 본다.

-정부가 AI 기술 혁신에 힘을 쏟고 있다, 중국을 추월할 수 있을까.

“AI 기술 혁신에는 대규모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 우수한 인재 등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정도다.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중국은 컴퓨팅 파워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었지만, 인재에 강점이 있었다. AI 관련 논문을 보면 거의 70% 이상 중국인 저자가 포함된다. 중국 연구자 없이는 이제 연구가 안 되는 현실이다. 대신 우리는 국방 등 특화된 영역에서 미중에 못지않게 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소버린 AI를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국가 주도 성장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게 바람직한가.

“AI 시대로 접어든 후 국제 질서가 급변하고 있다. 세계화 자유무역의 시대가 끝나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시대로 돌아갔다고 봐야 한다. 60, 70년대 당시의 국가 시스템과 지금은 다르다. 권위주의적 의사 결정 구조가 전문가 등 민관 협업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지금은 국가적 자본 투자 없이는 혁신을 이루기 어렵다. 특히나 미중은 민간 빅테크 기업이 천문학적 투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만한 여력을 가진 기업이 극히 드물다. 기업의 이익이 국가의 이익과 일치하는 현실에서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라도 국가가 적극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이동현 논설위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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