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8월 14일 밤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대형 룸살롱 서진회관 앞 도로에 나는 서 있다. 지금 저 건물 안에서 집단 살육이 벌어지고 있다. 기득권 조폭 맘보파 조직원들이 후발(後發) 조폭 ‘서울 목포파’에게 처참히 살해당하고, 겨우 살아남은 자들은 중상을 입는다. ‘21세기 한국형 19금 조폭 피칠갑 영화’의 장면들을 연상하면 된다. 사건의 발단은 사소한 시비였으되 파장은 한국 사회사(社會史)에 남는다. 우연한 사건이 한 사회의 해수면 아래 숨어 있던 어두운 빙산을 드러나게 하고, 한 시대의 매듭을 짓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1993년 4월부터 1994년 9월까지 벌어진 ‘지존파(至尊派) 사건’처럼.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의 본질은 이러니저러니 하는 사연과 결과에 있는 게 아니라, 회칼이 난무하는 그 ‘폭력의 버전 자체’와 검거된 주범의 강퍅하고 당당한 태도에 있다. 이른바 김두한, 시라소니류의 낭만파 주먹들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음을 대중은 뒤늦게 ‘감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알거나 깨닫는 것과는 한참 다르다. 대중은 시대의 변화를 찬바람 느끼듯 ‘느낄 뿐’이고 또 그래야만 과거의 것들과 비로소 결별하게 된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 내에서 주사파 운동권이 점점 쪼그라들고 대중과도 멀어지게 된 것은 대중의 이념적 판단보다는 서태지, 룰라 같은 대중문화가 판을 치는 시대상의 영향이 크다. 대중은 사회현상을 따르지 않는다. 대중은 ‘자연현상’을 따르는데, 그게 바로 대중의 사회현상이다.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단속이나 탄압에 의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의 구조와 유행하는 ‘인간형’이 변하면 그때 사라진다. 만물의 박멸약은 ‘민망’인 셈이다. 한데 그 민망함을 극복해 내기 위해 국회의원 같은 생존의 가면을 쓰는 종자들도 있다. 새로운 시대에 과거의 폐해가 옷만 갈아입고 활개 친다면 그것들이 바로 최악의 ‘반동’일 것이다. 그 반동들이 멀쩡한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냐고 마구 소리치는 이 사회가 내면적으로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보다 덜 폭력적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의 본질은 이러니저러니 하는 사연과 결과에 있는 게 아니라, 회칼이 난무하는 그 ‘폭력의 버전 자체’와 검거된 주범의 강퍅하고 당당한 태도에 있다. 이른바 김두한, 시라소니류의 낭만파 주먹들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음을 대중은 뒤늦게 ‘감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알거나 깨닫는 것과는 한참 다르다. 대중은 시대의 변화를 찬바람 느끼듯 ‘느낄 뿐’이고 또 그래야만 과거의 것들과 비로소 결별하게 된다.
예컨대 1990년대 중반 이후 대학 내에서 주사파 운동권이 점점 쪼그라들고 대중과도 멀어지게 된 것은 대중의 이념적 판단보다는 서태지, 룰라 같은 대중문화가 판을 치는 시대상의 영향이 크다. 대중은 사회현상을 따르지 않는다. 대중은 ‘자연현상’을 따르는데, 그게 바로 대중의 사회현상이다. 악한 것이든 선한 것이든 단속이나 탄압에 의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사회의 구조와 유행하는 ‘인간형’이 변하면 그때 사라진다. 만물의 박멸약은 ‘민망’인 셈이다. 한데 그 민망함을 극복해 내기 위해 국회의원 같은 생존의 가면을 쓰는 종자들도 있다. 새로운 시대에 과거의 폐해가 옷만 갈아입고 활개 친다면 그것들이 바로 최악의 ‘반동’일 것이다. 그 반동들이 멀쩡한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냐고 마구 소리치는 이 사회가 내면적으로 ‘서진 룸살롱 살인 사건’보다 덜 폭력적이라고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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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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