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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 얽혔지만 사람관계 중요” “정부가 교류기회 더 만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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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 어울린다∼.”



지난달 30일 일본 국립올림픽기념청소년종합센터. 한·일 고교생 40여명은 한복과 기모노를 엇갈려 입고는 서로 옷맵시를 칭찬하느라 바빴다. 한편에서는 일본 학생들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본 적이 있다”며 공기놀이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한국 학생들은 끝이 동그랗게 파인 나무 봉에 실로 이어진 공을 얹는 일본 전통 장난감 ‘겐다마’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한국 민간단체 한일협회가 7∼8월 두 나라를 오가며 마련한 6박7일짜리 ‘한·일 학생 교류캠프’에서 토론, 발표, 스포츠, 노래 등을 함께 했다.



이들 한·일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의 이야기’였던 한·일 관계와 과거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번 행사에 참가한 한국 쪽 김수인(검단고 2), 반승연(반곡고 2), 임서빈(경안고 3)과 일본 쪽 가와시마 시온(사쿠라국제고 2), 구보조노 유리미(도쿄가쿠게이대 부속고 1), 산다케 마이카(아쓰기고 2)를 만나 미래 세대들이 생각하는 한국과 일본의 앞길에 대해 들어봤다. 이들은 “요즘은 한국말을 잘하는 일본 친구, 일본말이 능숙한 한국 친구들도 많은데 서로 케이(K)팝과 (일본)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한다고 얘기했다”며 “우리 또래들이 더 자주, 많이 만나서 서로 이해할 기회를 가지면, 미래에는 두 나라 관계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뿌리가 생기는 것 아니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으로 대학 진학을 꿈꾸는 가와시마는 케이팝 얘기가 나오자 눈이 커졌다. 그는 “초등학생 때 텔레비전에서 걸그룹 카라의 춤과 노래를 보고 ‘한국 아이돌의 개성과 매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대해 알고 싶었다”며 “지난해부터 한국말을 본격적으로 배우는 중이고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다”고 했다. 산다케는 케이팝으로 시작된 관심이 한국 음식 사랑으로 번진 경우다. 그는 “트와이스를 보고 케이팝에 빠졌다가 음식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최애는 ‘김밥’”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구보조노는 “엄마가 만들어준 떡볶이 맛에 반했고, 절반의 뿌리를 알아간다는 느낌으로 한국에 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딱딱한 교과서를 통해 서로를 배우는 대신, 재밌는 영상을 보거나 문화를 직접 체험하며 일본을 더 친숙하게 느끼는 건 한국의 또래들도 비슷하다. 외교관을 꿈꾸는 수인은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이나 재밌는 영화를 보면서 어릴 적 교과서를 통해 막연히 느꼈던 경계감을 허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번역가를 지망하는 승연은 “교과서에서 일본에 대해 배운 건 주로 어두운 과거사가 대부분이었는데, 유튜브 등을 통해 일본 문화나 먹거리, 여행 정보를 보면서 좋은 점도 많이 알게 됐다”며 “특히 애니메이션이 나랑 잘 맞는다”고 했다.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한 서빈은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만나 서로 상대 말로 대화를 하는 ‘언어 교환’으로 말과 문화를 동시에 배우고 있다.



그는 “인터넷 화상 전화로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앱을 통해 일본 사람들과 ‘언어 교환’을 하면서 일본말을 배우고, 좋은 사람들과 교류도 하고 있다”고 돌아봤다. 과거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한·일 젊은 세대들은 한국의 케이팝이나 ‘아니메’(일본 애니메이션)로 대표되는 대중문화와 여행 등을 통해 이미 거리감을 좁히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 케이팝 그룹들의 대형 콘서트가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는 게 대표적이다. 또 한국에선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다이쇼 시대(1912∼1926) 일본 문화가 반영된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2021년 국내 개봉해 20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신드롬을 일으켰다. 곧 한국 개봉을 앞둔 신작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도 예매율 1위를 기록했다.



한·일 젊은 세대들이 서로를 대하는 자세도 기성세대들과는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서빈은 “예전에는 일본 문화에 관해 얘기하면 ‘너 일본 좋아하냐’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얘기를 거의 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인은 “저만 해도 더 어렸을 때는 역사 문제 때문에 일본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여행을 시작으로 일본 문화 등을 공부하면서 생각하는 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가와시마는 이런 기분 좋은 변화를 반겼다. 그는 “일본에서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처음 한국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며 “최근 일본이나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우리 또래 한국 친구들이 많아졌다는 인상을 받았고 그게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은 지난 6월 여론조사 기관 한국리서치와 함께 전국 성인 남녀 1509명을 대상으로 한 ‘2025 동아시아 인식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63.3%가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지난해(41.7%)와 견줘 21.6%포인트 급등한 수치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청년(MZ) 세대 가운데 18∼29살의 74%가 일본에 호감을 표시하고 있다”며 “이들은 일본 대중문화 소비의 주역이다. 한·일 상호 인식의 향상, 특히 상호 호감도를 상승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쪽에서도 내각부가 올해 발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2024년 10∼11월 실시)에서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고 답한 18∼29살 청년층이 72.5%에 이른다. 다른 연령대가 최소 48.1%(40대)∼최대 59.0%(30대)인 것과 견줘 큰 폭의 차이가 있다.



이들은 한·일 사이에 있었던 역사가 왜곡되거나 잊혀선 안 되지만, 더 나은 미래로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했다. 승연은 “시대가 바뀌면서 옛날 일들을 좋은 방향으로 정리하고, 서로가 좋은 모습과 인상으로만 교류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빈은 과거를 배우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젊은 세대들의 ‘균형 감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주변에서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건 좋지만, 역사까지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이해하지 말라’는 조언을 종종 들어요. 일본 문화를 좋아하면서 역사도 늘 기억하자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이런 인식은 공감대를 만들었다. 가와시마는 “과거에 일본이 한국에 나쁜 일을 했다는 데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서도 “그래도 과거와 현재를 잘 구분해서 어떻게든 앞으로 잘해나갈 방법을 찾아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보조노는 가해와 피해 역사가 얽히고설킨 이웃 나라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서로를 ‘국가 관계’로 대하기보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한·일 관계가 국가 대 국가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과거사랑 관계없이 한국 사람과 문화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이들은 한·일 민간단체들뿐 아니라 정부,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등이 젊은 세대들에게 더 활발한 교류의 창을 열어줬으면 하고 바랐다. 한국 쪽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본어 수업시간 외에는 일본 관련 재밌는 정보나 문화를 배울 시간이 없는데, 학교 안팎에서 특강이라거나 교류 모임 같은 걸 많이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수인)거나 “일본에 관심이 많아도 따로 시간이나 비용을 내기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 학교나 공공기관 등이 인터넷 공간에서 일본인들과 만날 기회를 만들어줬으면 한다”(서빈)고 했다. 일본 학생들은 “한국말을 공부해도 일상에서 쓸 기회가 없는데 한국에 가서 쇼핑도 하고, 결제할 때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다”(산다케)거나 “일본이 미국·오스트레일리아 등과 고교 교환 학생 제도를 운용하는데, 한국에서도 잘 활용하면 청소년들이 교류하면서 언어나 문화를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가와시마)이라고 기대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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