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혐의로 조사받고 승적을 박탈당한 스융신 소림사 전 주지./연합뉴스 |
최근 중국 소림사 주지가 재산을 빼돌리고 여러 여성 사이에 자식까지 낳았다고 해서 논란이 됐지요. 이 뉴스를 접하면서 저도 모르게 “결국…”이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소림사 주지의 비리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몇몇 계기를 통해 접한 중국 불교의 모습이 왠지 위태롭게(?) 느껴졌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종교 본연의 모습을 넘어선 과도한 상업화, 관료화, 대형화 등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이었습니다.
몇 가지 장면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상업화-소림사
소림사 무술 청년이 쿵푸 동작을 취한 모습. /조선일보DB |
지난 2007년 방문했던 중국 소림사 풍경은 정말 특이했습니다. 저도 어릴 땐 이소룡, 성룡 등 쿵푸 영화(당시엔 중국 영화, 혹은 홍콩 영화라고 했지요)에 열광했습니다. 그 때 제 또래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소림사=쿵푸’로 알 정도였지요.
그렇지만 막상 찾아간 현장이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절 입구 멀리서부터 요란한 기합 소리가 들리고 수십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구령에 맞춰 똑같은 쿵후 동작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영화팬이나 쿵후팬에게 소림사는 쿵후의 사찰이지만 불교 사상사적인 면에서 본다면 소림사는 중국 선종(禪宗)의 종가(宗家) 같은 곳입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이란 말이 있지요. 서쪽, 즉 인도의 선승 달마가 처음으로 중국에 선불교를 전하면서 머문 곳이 바로 소림사입니다. 2007년 당시 제가 소림사를 찾은 것도 ‘중국 선종 사찰 순례’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 조계종 주최로 한국 선승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던 고우(古愚) 스님을 모시고 일간지 종교 담당 기자들이 중국 선종 사찰을 순례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소림사에 ‘달마’는 없고 ‘쿵푸’만 보였던 것이죠. 달마가 9년 면벽(面壁)했던 동굴 ‘달마굴’은 소림사 뒤 숭산의 높은 바위 절벽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소림사를 방문한 사람 수에 비해 달마굴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더군요. 달마 대사가 쿵푸의 들러리를 서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대형화-법문사, 불교 테마파크인가
중국 시안 인근 법문사 전경. 148m짜리 초대형 탑이 서 있다. /김한수 기자 |
그 이후로 몇 차례 중국 불교를 접할 때마다 느낀 것은 ‘어마어마한 스케일’이었습니다. 중국 사찰들은 우리 기준으로 보면 수행 공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기복(祈福)의 무대’ ‘불교 테마파크’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대형화의 대표적인 예로 시안에 법문사라는 사찰이 있는데요. 원래 당나라 때 부처님의 손가락 사리(불지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1981년 폭풍과 홍수로 큰 탑이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아래 지하에 봉안돼 있던 불지사리가 발굴돼 유명해진 곳이죠. 그런데 그런 전설이 깃든 사찰을 새로 지은 대형 건물들로 도배를 했습니다.
2018년 찾았던 법문사는 우선 일반적인 사찰과는 스케일과 콘셉트 자체가 달랐습니다. 불지사리를 봉안한 탑은 에펠탑처럼 우뚝 솟아있는데 높이가 148m입니다(에펠탑은 324m). 황금색으로 칠해진 이 탑은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올 때부터 멀리서 꼭대기가 보일 정도입니다. 절 입구에서 이 탑(조형물)까지는 1230미터, 중앙의 도로 폭은 108미터입니다. 전동카트를 타고도 탑까지 4~5분이 걸립니다. 서울 광화문광장의 길이가 557m, 폭이 34m라고 하니 스케일이 짐작이 되시지요? 불지사리는 이 조형물 지하 6미터에 봉안돼 있고요. 중앙 통로를 지나서 한쪽 편에 옛날 탑과 절이 있기는 하지만 방문객 눈에는 저 웅장한 건물과 조형물만 들어옵니다. 전통 사찰이란 느낌은 거의 없지요.
그런데, 법문사는 대부분 건물을 신축해서 그렇다고 쳐도 앞서 말씀드린 소림사를 비롯해 전통 사찰들 역시 새로 짓는 부속 건물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인상적인 것은 건물이 새것이든 오래된 것이든 관계없이 어떤 사찰을 가더라도 마치 화재가 난 것처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방문객들이 불붙인 향에서 나는 연기입니다. 우리도 사찰에 가면 불자들이 향을 사르곤 합니다. 그러나 중국은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는 향 한두 개비를 사르지만 중국 사람들은 양손으로 쥐어도 가득할 정도의 향 묶음에 통째로 불을 붙이고는 위아래로 흔들면서 기도합니다. 향로의 크기도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갈 정도로 큽니다. 상상을 초월하지요. 주로 재산 관련 복을 빈다고 하지요. 물론 사찰 곳곳엔 대형 불전함이 놓여 있고요.
#관료화-스님인가 CEO인가
그렇다면 이들 사찰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솔직히 스님이라기보다는 경영자, CEO 혹은 공무원으로 보였습니다.
이 공간을 잘 ‘경영’하는 것이 유능함의 척도처럼 보였습니다. 원래 사찰에는 수행승인 이판(理判)과 행정승인 사판(事判)으로 소임이 나뉘곤 합니다. 그렇지만 사판승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중국의 사판승은 그 스케일이 대단했습니다. 돈과 권력이 따를 수밖에 없고, 자칫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 보였습니다.
중국에서는 사찰 주지를 대개 ‘방장(方丈)’이라고 부르더군요. 우리 불교의 경우엔 ‘주지(住持)’와 ‘방장’은 격이 다릅니다. 우리의 경우, 방장은 강원 선원 율원 염불원 등을 갖춘 ‘대수도원’(총림)의 최고 어른입니다. 그래서 방장은 그 사찰의 수행을 상징하는 어른입니다. 주지는 행정을 담당하는 보직이고요. 그런데 중국에서는 방장이 행정 책임자이더군요.
그런데 사찰은 천년 고찰이지만 방장은 50~60대였고, 더 젊은 사람도 많았습니다. 우리 불교에서 방장이 되려면 최소 70대 이상에 오랜 수행 이력을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소림사 사건’의 주인공 스융신 주지는 올해 63세입니다.
사건이 불거진 후 드러난 소림사 주지의 이력은 화려했습니다. 1999년 만 34세의 나이로 소림사 주지에 임명된 그는 2000년대 들어 소림사를 배경으로 영화뿐 아니라 각종 상표 등록을 통해 2019년 기준 12억 위안(약 2300억원)의 연 매출을 올렸다고 하네요. 중국의 국회의원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도 네 차례 지냈고요. 소림사를 방문한 세계적 명사들을 만난 것은 물론이고 올해 초엔 교황청을 방문해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만났다고 합니다.
약관의 나이에 그 유명한 소림사 주지가 되고 26년 동안 장기 집권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거기엔 중국의 불교 육성 정책이 깔려 있습니다.
#불자 1억명 양성...중국의 불교 우선 정책
줄을 잇는 대규모 불사(佛事)와 매년 1만 명씩 배출된다는 승려, 불자(佛子) 1억 명….
외형적으로 중국 불교는 급성장했습니다. 대형 불사에는 중국 기업뿐 아니라 정부 예산까지 지원된다고 했습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이렇게 불교 육성에 앞장서는 한편 대외적으로도 ‘불교 종주국’을 자처하려 했습니다. 코로나 이전 중국은 3년마다 전 세계 불교 지도자들을 초청해 ‘세계불교포럼’을 개최하면서 세계 불교의 중심으로 부상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았지요. 중국은 개신교나 가톨릭, 이슬람에 대해서는 이런 자유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왜 불교만 우대할까요.
국내 종교계에서는 2000년 넘게 ‘중국화’된 불교를 우선적으로 육성해 다른 종교를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중국을 방문해 공산당 고위 인사를 만난 한 스님은 당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불교 인구가 1억 명이 될 때까지 집중적으로 불교를 육성할 것이다.” 제가 만났던 종교 담당 관리들의 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떤 관리는 “종교는 국가 경제사회 발전에 무엇을 기여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관리는 한국의 개신교 목사들 앞에서 “중국 개신교는 불교를 본받아야 한다”고까지 훈계조로 말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은 중국이 왕조 시대부터 가지고 있던 오래된 사고방식입니다. 어떤 종교라도 통제권은 중국(왕조 시대에는 황제, 지금은 공산당)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개신교나 가톨릭, 이슬람은 외부 세력과 연계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반해 불교는 중국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쉽지요. 중국은 종교 정책에 관해 ‘외국인의 신앙 자유는 존중한다. 그러나 외국인의 중국 내 포교 활동은 금지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지요. 불교는 외국인이 와서 포교할 필요도 없고 통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중국이 불교를 집중적으로 육성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 불교는 한동안 ‘전통 단절’이 있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전통 문화가 대부분 단절돼 한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지요. 중국 불교 역시 마찬가지였답니다. 그래서 1990년대 이후 불교를 육성하려고 할 때 인력이 부족했고,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중됐습니다. 당시 30대, 즉 1960년대 중반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이었죠. 문제는 소수에게 권력과 돈이 몰리면 부패하게 된다는 점이지요. 이번에 문제가 된 소림사 주지도 그런 예입니다.
전 중국불교협회장 학성 스님. 2015년 회장으로 선출됐다가 2018년 사임했다. /김한수 기자 |
소림사 주지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7년 전에도 중국 불교계 거물이 실각한 적이 있습니다. 중국불교협회 회장을 지낸 학성(學誠)이란 사람입니다. 2018년 당시 중국불교협회와 조계종의 승려 교육 교류 때 중국에서 학성 중국불교협회 회장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1966년생으로 당시 만 52세의 젊은 분이 중국 불교 전체를 대표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중국불학회 회장과 베이징 용천사, 시안 법문사 등 전국의 주요 사찰 3곳의 주지를 동시에 맡고 있었습니다. 모두 대형 사찰들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불과 몇 개월 후 부패 및 성폭행 혐의를 받고 모든 공직에서 사퇴했습니다. 이번에 소림사에서 쫓겨난 주지와 혐의가 똑같습니다. ‘부패’ ‘성추문’은 그만큼 승려에게는 치명적이지요.
그런데, 이번 소림사 사건엔 좀 묘한 구석도 있습니다. 소림사 주지는 이미 10년 전인 2015년에도 똑같은 부패와 성 추문으로 내부 고발을 당한 적이 있었거든요. 당시엔 덮었다가 이번에 똑같은 혐의로 승적을 박탈하고 완전히 몰락한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음모론이 제기되는 모양입니다. 중국 당국이 불교계 세대교체 혹은 인적 쇄신을 거친(?)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요? 한때 중국 불교계를 대표하던 소림사 주지의 몰락을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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