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
1998년 구글 창업 당시 자신의 차고를 사무실로 제공하며 회사 설립에 커다란 도움을 주고, 회사에 합류하여 놀라운 성장을 이끌며 '구글의 대모'로 불리던 수전 워치츠키는 9년간 유튜브의 CEO를 역임하고 건강상의 이유로 2023년 회사를 떠났다. 워치츠키는 2006년 유튜브의 인수를 반대하던 구글의 경영진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유튜브를 인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4년 CEO 자리에 오른 워치츠키는 유튜브의 초고도 성장을 이끌며, 16억 5000만 달러로 인수한 유튜브의 기업가치를 무려 333배 오른 5500억 달러로 키웠다.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다. 그녀는 2022년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에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고 서명했으며, 안타깝게도 작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워치츠키가 퇴임할 당시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수많은 언론들이 이례적으로 "실리콘밸리에서 뛰어난 여성 리더가 사라지고 있는 데에 대한 우려가 높다."고 논평을 내놨다. 남성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테크 산업에 강력하면서 조화로운 리더십으로 뛰어난 실적을 보여준 여성 CEO의 부재를 안타까워한 것이다. 지금까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적인 리더로 찬사를 받았던 여성 최고경영자는 메타의 셰릴 샌드버그, 이베이의 멕 휘트먼, IBM의 지니 로메티, 야후의 마리사 메이어, 휴렛패커드의 칼리 피오리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전문경영인 출신으로 지금은 현직에서 물러났다. 워치츠키의 퇴장으로 이제 테크 기업의 여성 최고경영자는 오라클의 새프라 캐츠, AMD의 리사 수만 남았다.
지금까지 테크 기업을 창업하여 성공을 거둔 여성 CEO의 사례는 거의 없다. 그나마 대표적인 인물로 거론됐던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 핀테크 업체 '프랭크'의 찰리 제이비스는 사실상 실체 없이 거짓 이미지로 포장한 사기로 결론이 나면서 엄청난 충격을 주며 시장에서 사라졌다. 앤 워치스키가 설립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 회사 '23andMe'는 2006년 창업 후 꾸준히 성장하여 2021년 나스닥에 상장까지 하였으나, 이후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다. 결국 금년 3월 주가가 고점 대비 99% 이상 하락한 0.7달러를 기록한 상태에서 파산 보호 신청을 하며 상장폐지 됐다. 앤 워치스키는 수전 워치스키의 동생이다. 안타깝게도 이들 이외에는 특별히 언론의 주목을 끈 여성 안트러프러너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실리콘밸리에 새롭게 떠오른 여성 CEO가 화제다. 그 주인공은 '싱킹 머신스 랩(Thinking Machines Lab, TML)'의 CEO인 미라 무라티이다. 오픈AI의 CTO였던 그녀는 'ChatGPT의 창조자'로 불리며, 2023년 테크 전문 매체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인물'에 오르기도 했다.
TML은 무라티가 금년 2월 실리콘밸리에 설립한 신생 AI 스타트업으로, 인공지능이 단순한 코딩 및 수학 문제 해결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서 인간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진화돼야 한다는 기조 하에, AI 모델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TML은 창업 후 불과 4개월 만에 2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거금을 투자 받으며, 기업가치가 무려 140억 달러로 유니콘을 넘어 '데카콘(Decacorn)'이 되었다. 데카콘은 기업가치가 100억 달러가 넘는 초대형 유니콘으로 전 세계에 스페이스X, 오픈AI 등 50여 개에 불과하다. 투자 유치를 위한 IR 자료에도 제품이나 재무 계획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라티의 명성과 평판만으로 실리콘밸리 최고의 벤처캐피털인 '안드레센 호로위츠(Andreessen Horowitz)'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투자자가 몰렸다. 오픈AI, 앤트로픽과 같은 세계 최고의 AI 회사나 구글, 메타 등 빅테크기업들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라티의 모국인 알바니아 정부도 국가 예산을 수정하면서까지 1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번 자금 유치는 '시드(seed)' 투자에 해당하지만, 실리콘밸리 기준으로도 이례적인 초대형 투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드 투자는 아직 제품 개발이 완료되지 않았거나 공개되지 않은 단계에서의 초기 투자를 뜻한다. 시드 투자로는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일반적인 스타트업의 생애 총 투자 유치 금액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또한 투자자들은 무라티에게 100배의 복수의결권을 부여하며 엄청난 신뢰를 보였다. 회사의 모든 중요 안건에 대한 최종 결정을 일임한 것이다.
전체 직원은 50명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이 오픈AI , 구글, 메타AI , 미스트랄AI 등 세계 최고의 AI 회사에 근무하던 연구원과 엔지니어들이며 회사 출범과 동시에 합류했다. 오픈AI의 공동창업자인 존 슐만도 참여했다.
무라티는 1988년 알바니아에서 태어나 16살에 캐나다로 이민 온 알바니아계 캐나다인이다. 아이비리그인 다트머스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2013년 테슬라에 입사해 모델 X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2018년, 오픈AI에 합류하여 ChatGPT 개발을 총괄했다. ChatGPT, 달리(Dall-E), 음성 모드의 AI 제품 개발을 주도했으며, 오픈AI 이사회가 2023년 CEO인 샘 알트만을 전격 해임했을 때 잠시 CEO 대행을 맡기도 했다.
무라티가 AI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테슬라에 입사하여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오토파일럿'과 공장자동화를 위한 AI를 개발하면서다. 모델X 개발을 총괄하면서 무라티는 특정한 일을 잘하는 AI가 아닌 모든 일을 해내는 AI, 이른바 '일반 인공지능(AGI·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기존 AI는 한정된 분야에서 인간을 흉내 내거나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무라티의 생각은 달랐다. 그래서 오픈AI로 회사를 옮겨 본격적으로 AGI 구현에 나섰다. 오픈AI에서 CTO로서 AI 기술 개발을 총괄했다.
2019년에 오픈AI가 영리 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무라티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일론 머스크가 의견 충돌로 이사회를 사임했다. 이 당시 무라티는 AI 관련 인력이 한정적이라 최고의 인재를 영입하려면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고, 기술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클라우드 컴퓨팅 비용을 감당하려면 영리 기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기업들은 기술이 상용화가 되기 전에는 철저히 개발과정을 숨긴다. 완전하지 않은 기술이 공개됐을 때 드러나는 여러 가지 약점이나 문제점에 대한 비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수없이 많았지만 공개되지 않았던 이유다. 하지만 무라티는 "대중과 접점 없이도 기술 발전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AI를 개발하는지는 알 수 없다."며 전 직원들을 설득해 전격적으로 개발 과정을 대중에 공개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오픈AI의 개발 방식을 따라 하게 된 것이다.
2025년 다보스포럼에서 "가치가 없는 AI는 양심 없는 지능"이라고 강조한 무라티는 최근 메타 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천문학적 금액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 회사의 사명(Mission Statement)을 접근성, 사용자 정의, 투명성을 갖춘 AI 도구를 개발하고, 실리콘 밸리 '거대 기업'의 독점 시장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삼고 있다. 최근 무라티는 현재 프로젝트는 극비로 진행되고 있지만, 인공지능을 더욱 이해하기 쉽고 적응력이 뛰어나며 전반적으로 더욱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첫 번째 제품이 조만간 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창업 4개월 만에 데카콘이라는 기적을 만든 무라티의 역작이 기대된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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