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주요 은행 ATM 창구 모습. 2025.6.22 자료사진=연합뉴스 |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중대산업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를 강조하는 가운데 은행이 대출심사 평가에 중대재해 발생 여부를 반영하는 방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신용평가 시 기업 윤리경영·법규준수 항목을 이미 고려하고 있는 데다 건설·제조업 대출 전반이 위축될 수 있어서다. 중대재해 발생과 관련 실시간 정보 공유가 어렵고 확정판결 전부터 대출을 막아버릴 경우 불거질 역차별 논란도 우려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아직 여신심사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평가요소로 명시할 지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 여신담당 실무자들과 은행연합회는 지난주 회의를 열어 중대재해 관련 기업 여신심사 체계와 관리 현황을 공유했다. 지난 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은행연합회, 각 은행 여신심사관리 담당 임원들이 중대재해 여신관리 방안을 논의한 데 대한 후속조치다. 대통령이 지난 7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중대재해 기업 관련 여신심사 강화방안에 대해 “제안이 재미있다”고 칭찬한 후 당국과 은행은 곧바로 논의에 착수했다.
현황 파악에 나선 은행들은 정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평가요소로 명시하는 데 대해서는 난감하다는 표정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중대재해 발생 기업이라는 표현이 없을 뿐이지 비재무분야 평가요소로 ESG경영, 법규준수 여부를 고려하고 있다”며 “중대재해 발생 시 기업 이미지 악화로 재무적 상황도 나빠질 수 있다. 현재 여신심사에서도 이런 평판 리스크 등을 포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은행업감독규정상 여신운용 원칙에 따르면 은행은 차주의 리스크 특성·재무상태·미래 채무상환능력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신용리스크를 철저히 평가하고 차주의 신용상태·채무상환능력 변화를 상시 모니터링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비재무적 항목도 반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한은행은 대표자의 윤리경영 실천의지와 인프라 구축, 사회적 공헌도와 법규준수 여부 등을 고려해 여신 심사 전 평가를 진행한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자금을 융통해야 할 숙제를 받은 은행들은 규제 강화가 오히려 기업금융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점도 우려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건설업, 조선업, 제조업에 대한 자금융통이 위축될 수 있다”며 “은행이 중대재해 리스크를 크게 반영해 건설업종 대출을 줄줄이 축소하면 안 그래도 어려운 건설업 자금융통이 더 어려워져 공급물량 감소, 분양 지연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갑자기 특정 업체나 업종에 대한 대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기도 어렵다. 산업재해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1분기 말 기준 우리은행(2250억원), 하나은행(700억원), 농협은행(500억원), SC제일은행(100억원) 등 은행에서 약 3952억원을 차입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기업대출을 옥죄어 해당 기업이 어려워지면 근로자들 또한 같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중대재해 발생 자체는 고쳐야 할 문제이지만 하나의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문제”라고 짚었다.
여신심사 평가 반영에 대한 실무적인 문제도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과 그 사고 내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어야 여신심사 평가에도 곧바로 반영이 가능하다. 재판을 통해 중대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밝혀진다면 역차별 논란이 일 수 있다.
금융당국도 여신심사·관리 강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어떤 쪽으로 결정하지 않고 실태를 파악하고 있다”며 “이미 평가기준에도 있고 (중대재해 기업에는) 신용등급을 조정할 수 있다. 아직 확정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