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원은 10일 KLPGA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KLPGA |
10일 제주 사이프러스 골프앤리조트(파72·6586야드)에서 열린 KLPGA(한국 여자 프로골프) 투어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4라운드 18번 홀(파5). 단독 선두 고지원(21)이 90야드를 남기고 친 세 번째 샷을 홀 옆 91㎝에 떨어뜨리자 그린 주변에서 한 선수가 폴짝폴짝 뛰었다. 고지원의 언니이자 투어 통산 3승을 거둔 고지우(23)였다. 언니의 응원 속에 고지원은 마지막 홀에서 가볍게 버디를 잡고 우승을 확정했다. 데뷔 3년 차, 61번째 대회에서 이룬 첫 승이었다.
언니가 가장 먼저 달려와 고지원을 안아줬고 자매는 함께 웃었다. 어머니 김효정(47)씨는 “부모가 맞벌이를 하느라 어릴 때부터 두 딸이 뭉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며 “우애 좋게 함께 단단하게 커줘서 뿌듯하고 대견하다”고 했다.
고지원은 이날 보기 없이 버디 3개를 잡아내 최종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하며 상금 1억8000만원을 받았다. 첫 우승을 고향 제주도에서 달성했다. 노승희가 2타 차 준우승(19언더파), 미 LPGA 투어에서 뛰다가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윤이나는 공동 3위(17언더파)였다. 고지우는 공동 41위(8언더파)에 올랐다.
고지원과 언니 고지우는 KLPGA 투어 사상 두 번째 ‘자매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박희영(38)-박주영(35)이 자매 우승 기록을 갖고 있었다. 박희영은 2004~2006년 KLPGA 투어 4승을 거두고 LPGA 투어에 진출해 2020년까지 3승을 달성했다. 동생 박주영은 2023년 ‘우승 전까지 대회 최다 출전 기록’(278회)을 세우며 33세에 감격의 첫 승을 이뤘다. 자매가 한 해에 우승한 건 고지원-고지우가 처음이다. 동생보다 1년 앞서 2022년 KLPGA 투어에 데뷔한 고지우의 가장 최근 우승은 지난 6월 맥콜·모나 용평오픈이었다.
그래픽=이진영 |
LPGA 투어에선 스웨덴 안니카(55·72승)-샤를로타(52·1승) 소렌스탐, 태국 모리야(31·3승)-에리야(30·12승) 쭈타누깐, 미국 제시카(32·6승)-넬리(27·15승) 코르다가 자매 챔피언으로 기록돼 있다. 소렌스탐 자매는 2000년, 코르다 자매는 2021년에 나란히 우승컵을 들기도 했다. 일본 JLPGA 투어에는 후쿠시마 아키코(52·24승)-히로코(48·1승), 호리 나쓰카(33·2승)-고토네(29·2승), 쌍둥이인 이와이 지사토(23·8승)-아키에(23·6승) 자매가 있다. 이와이 자매는 올해 LPGA 투어에 나란히 진출해 현재까지 지사토만 한 차례 우승했다.
지난 6월 고지원(왼쪽)이 맥콜 모나 용평 오픈에서 우승한 언니 고지우에게 물을 뿌려 주고 있다. /KLPGA |
고지원은 “언니와 라이벌 의식은 없고 항상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자매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함께 골프를 시작했다. 합기도 체육관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어린 시절부터 활동적이었던 두 딸에게 여러 운동을 시켰고, 실내 골프 학원에도 함께 보냈다. 고지원은 처음에 낯가림이 있는 언니의 말동무를 해주는 것이 주 역할이었다. 그런데 언니를 따라 하며 놀다가 골프에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2학년 때 정식으로 입문하게 됐다.
자매의 어머니는 “(풍족하게) 뒷바라지해주기 어려운 환경이어서 지우가 지원이에게 골프를 가르쳐주고 연습도 서로 도와줬다”고 했다. 고지원은 “챔피언 퍼트 하고 나니 언니가 울고 있어 나는 눈물이 쏙 들어갔다”며 “언니를 보면서 골프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열정을 배우려 한다”고 했다.
고지원이 9일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3라운드에서 샷을 한 모습. /KLPGA |
고지원은 2023년 상금 랭킹 77위, 2024년 89위로 고전했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233~235야드에 그쳤고, 올해는 풀타임 시드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평균 버디 수 1위(4.32개)로 ‘버디 폭격기’란 별명을 갖고 있는 언니 고지우처럼 고지원도 올 시즌엔 버디 사냥에 익숙해지고 있다. 평균 버디 수 7위(3.97개)에 올라 있다. 소속팀 삼천리 관계자는 “동계 훈련 기간 체중을 늘리고 웨이트트레이닝을 강화하면서 드라이브샷 거리(242야드)도 10야드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고지원은 일주일 전 오로라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준우승에 이어 이날 우승으로 2027년까지 투어 시드도 확보했다. ‘회복 탄력성’이란 책을 읽고 생각을 전환했다는 그는 “이전에는 스폰서와 가족에게 증명하려 애쓰는 골프를 쳤다면, 나를 위한 골프를 하고 즐기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성장했다”고 했다.
제주삼다수 마스터스 우승자 고지원이 관계자들로부터 이 대회 특유의 '물허벅' 세리머니에 참여하고 있다. /KLPGA |
[이태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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