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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낮고 쓸쓸한 질투와 사랑으로 찾은 시의 길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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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도 한겨울로 빠트리는 시를 보며
연애시커녕 시 한 줄 못쓰던 속절없음
사랑을 궁구하다 만난 나의 나타샤는 ‘쓰기’




연애시를 써 보려고 애를 썼던 적이 있다. 누군가와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참 보기 좋은 것이어서, 그런 순간을 시로 남겨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단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시에 사랑이라는 단어 혹은 사랑과 관련된 서술어들을 슬쩍 넣어보기도 했지만 완성하고 나면 도무지 연애시다운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경험한 연애들, 혹은 막연하게 상상해 본 연애들을 열심히 떠올려도 다 쓰고 나면 영 찜찜했다. 시도하면 할수록 나는 연애시라는 게 무엇인지 깜깜하게만 느껴졌다. 연애란 뭘까, 연애시란 뭘까 생각하다 보니 점차 시라는 게 무엇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시에 강렬히 매혹되어 있던 때를 골라야 한다면 고등학생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무렵의 어느 날에도 나는 시를 쓰려 애쓰고 있었다. 온갖 시집들을 뒤적여 가면서 무엇을 쓸지, 어떻게 쓸지 머리를 쥐어뜯다가 백석의 시 전집을 꺼내 들었다. 전집 속에 들어 있는 백석의 시들은 교과서나 문제집에서 봐 왔던 것과 전혀 달라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한 세기 전에 쓰인 시들에 깃들어 있는 서글픈 아름다움이 나를 꽉 붙들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도록 붙들고 있던 시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다. 이 시를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곧장 눈이 “푹푹” 쏟아지는 어느 밤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희게, 소복하게, 그러나 말없이 “푹푹” 눈 내리는 장면을 마주했다. 오로지 “나타샤”만을, “나타샤”와 함께 “깊은 산골”로 떠날 생각만을 하는 ‘나’가 되었다. ‘나’에게 “고조곤히 와”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며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나탸샤”를, “아니 올 리 없다”던 “나타샤”를, 끝내 나타나지 않는 “나타샤”를 그리워했다. “나타샤”에 대한 ‘나’의 마음이 진짜 내 것도 아니면서 그랬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이구나, 멋진 일이구나 싶었다. 그런 걸 시로 써낸다는 건 어떤 걸까 궁금해졌다.



좋고 멋진 마음, 그러니까 사랑을 쓴다는 건 뭘까…….



어린 시절에 보던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어렸던 나는 주인공들의 사랑이 미래의 내게도 찾아올 줄 알았다. 그 믿음은 얼마나 순진했는지, 그런 사랑이 현실적인 데가 없다는 걸 오래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같다. 주인공들은 언제나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주인공들이 맞이하는 크고 작은 갈등은 매번 사랑에 의해 벌어졌고, 사랑으로 하여금 해결되었다. 모든 위기가 사랑만으로도 극복되는 세계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찬 용기였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사랑 또한 못지않게 열렬할 수 있다. 잠들어 있는 이의 옆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볼 때 생겨나는 애틋함, 마주 앉아 이야기를 늘어놓는 순간이 계속되길 바랄 때 느껴지는 가슴 한쪽의 뻐근함, 서로를 탓하고 모진 말을 늘어놓으며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훔쳐 닦다가도 그런 다툼이 사소해질 때 찾아오는 개운한 웃음 같은 것들로 말이다.



한없이 깊고 어두운 밤, 나는 백석의 시를 읽고 단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는 시를 써낼 자신이 없었다. 코끝이 시려웠고 겨울 외투가 무거웠고 스스로가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나를 그렇게 볼품없다 여기면서도 얼어붙은 길 위에서 발가락 끝에 힘을 주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균형을 잡고 나아가려고.



그날부터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써 내려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나타샤”에 대한 근면하고 성실한 사랑이 “푹푹” 내리는 눈이 되었듯이, 내 안에 흩날리는 말들을 붙들어서 “푹푹” 쌓이기를 소망했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왜 그동안 연애시 쓰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여태껏 열심히 더듬거려 보았던 나의 사랑은, 결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나의 “나타샤”는, 나의 쓰기였던 것이다. 덥고 습한 여름날 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간신히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를, 무엇을 써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러자 마침내 들려오는 흰 당나귀 우는 소리. “좋아서” 우는 소리가 멀찍이서부터 서서히 또렷해지고 있다.



박규현 시인 l 2022년 신춘문예 등단했다. 시집으로 ‘모든 나는 사랑받는다’, ‘새 우정을 찾으러 가볼게’ 등이 있다.





이제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을 들을 차례. 작가들이 숨어 애송하는 연애시의 내막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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