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첫 법안이 됐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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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불법 계엄과 탄핵, 대선을 거치면서 극단적으로 대립했던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첫 법안이 됐다. 재계는 여전히 격렬하게 반대한다. 재계가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법안을 보수당(국민의힘)이 합의해서 통과시켰다는 점도 참 특이하다.
사실 주주 충실 의무를 반영한 상법 개정안은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는 보수적 성향의 법안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다수이고 약자인 소수주주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진보적 성향의 여당(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게 된 것도 한국적인 특이한 현상이다.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여야 합의로 상법 개정이 통과된 것은 진보냐 보수냐의 문제가 아니라, 1400만 명이나 되는 개인투자자들의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상법 개정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단적이다.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경영진이 호재성 정보로 가득한 경영활동을 해서 코스피 5000을 향한 동력이 될 거라고 기대한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경영진이 주주들로부터 소송당할 것을 우려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한다.
적용 과정에 갈등 예상
사실 상법 개정안은 상식적이고 원론적인 내용을 담았을 뿐이다. 구체적으로 기업 지배구조를 어떻게 구성할지는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부분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 양쪽이 바라보는 시각차가 너무 커서, 실제 적용 과정에서 상당한 갈등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 충실 의무는 주식회사의 기본 구조와 상법 개정안이 만들어진 계기를 생각해보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주식회사는 많은 투자가 필요한 회사의 자금을 혼자 낼 수 없으니 여럿이 나눠 내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다수의 투자자가 모두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는 없으니 주주총회를 통해 대리인인 이사를 선임한다. 이사는 이사회를 구성해 경영진을 선임하고 관리·감독한다. 따라서 주주로부터 선임된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주 충실 의무를 굳이 상법에 명시하게 된 것은 이사회가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도 문제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100억원짜리 빌딩이 있으면 그 빌딩 자체는 주주의 이익이다. 그런데 100억원짜리 빌딩에 대해 내가 가진 권리가 10%냐 20%냐도 중요한 주주의 이익이다. 지분율을 높이려면 내 돈을 들여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사회가 소수주주의 지분율을 빼앗아 대주주에게 주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2009년 삼성에버랜드 대법원 판결이다.
상법 제382조는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은 법문상 회사를 법인으로만 해석했다. 이사회가 결정한 회사의 경영활동으로 대주주가 다른 주주의 지분율을 뺏어가도 회삿돈이 밖으로 나간 게 없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사가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이유는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회사의 재무적 이익과 상관없다면 대주주를 위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빼앗아도 된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그래서 법문에 주주 이익을 넣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고, 이 당연한 문구를 바꾸는 데 16년이 걸렸다.
2025년 7월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순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코스피 등 금융지표가 표시된 전광판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
막상 문구를 넣으려니 논란이 많았다. 그냥 주주라고 하면 대주주도 주주이니 주주 권익을 보호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주주라고 하면 주주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는데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이사를 처벌해야 하느냐고 반대론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또 회사는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하고, 주주는 당장 배당받고 싶어 한다면 이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배당을 안 하면 처벌받는 걸까? 수많은 몰이해와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주주의 훼방 속에 상법 개정 논의는 오랫동안 표류했다.
이사회에서 이뤄지는 대부분 의사결정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선관의무) 영역이다. 신중하게 판단하면 된다. 나중에 지나고 보니 잘못된 의사결정이었다 하더라도 판단 당시에 충분히 검토했다면 면책이 된다. 배당을 안 하는 대신 투자를 했다고 소송이 걸릴 일은 없다.
재계의 우려도, 소수주주 기대도 과도
주주 충실 의무는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때만 고민하면 된다. 대주주의 별도 회사, 대주주의 별도 재산과 관련 있을 때만 고민하면 된다. 배당은 많이 하든 적게 하든 모든 주주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주주 간 이해 상충이 발생하지 않는다. 특정 주주가 배당을 더 받고 싶다고 소송을 걸어봐야 패소할 것이 뻔하다. 소송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배당을 선택하느라 미래를 위한 투자를 못할 거라는 재계의 우려는 과도하다.
반대로 소수주주들의 기대도 과하다. 주가가 하락할 만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이사회가 주주 충실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유상증자의 경우를 보자. 유상증자는 회사가 돈이 필요해 자금시장에서 신규 투자를 받는 수단이다. 기존 주주는 지분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주가가 떨어진다.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미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투자해야 하고, 돈이 필요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유상증자도 대주주와 소수주주에게 차별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소가 아니다. 단기적으로 주가가 떨어질 수 있는 의사결정이라 하더라도 장기적 성장을 위한 자금조달은 충실 의무 위반이 아니다. 충실 의무는 단기 주가를 올리는 호재성 의사결정만 하라는 취지가 아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실제 이사회를 진행하다보면 대부분은 경영 판단에 따른 선관의무 대상이지 충실 의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안건은 일부 대주주와 관련 있는 몇 개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주주의 사리사욕을 위해 대주주에게만 많이 배당하고 다른 주주에게는 배당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일이 없을 것 같은가? 회삿돈으로 대주주 지분율을 높여주면 안 된다. 지분율을 높이려면 자기 돈으로 주식을 매입해야지, 모든 주주의 몫인 회삿돈으로 하면 안 된다.
일반인이 보기에 복잡한 방식으로 이뤄져서 그렇지, 이런 일은 그동안 매우 자주 발생했다. 일감 몰아주기, 합병 비율 조작, 인적·물적 분할 비율 조작, 자사주 마법과 자사주 백기사 등 한국 자본시장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이 대주주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벌어졌다. 대주주의 주식만 ‘금’ 주식이고, 나머지 주식은 ‘똥’ 주식이었다.
상법 개정으로 대주주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고 해서 한국 자본시장의 과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정답이 없는, 지속 가능한 경영활동을 할 수 있는 기반을 기업마다 자사에 맞게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기업이 적극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 조성도 필요하다. 투자자 보호는 투자자가 사회적 약자나 복지의 대상이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투자자 보호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고 이를 기반으로 더욱 과감한 경영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투자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수익은 경영활동을 통해 나온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경영활동이 위축된다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투자자와 기업인의 선순환
재계에서는 배임 소송 남발 등을 우려해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결정에 대해서는 배임죄를 면제해주는 형법 개정을 요청했다. 충분한 검토를 거친 경영상 판단은 원래 배임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동안 배임죄가 기업인을 옥죄는 권력의 칼로 악용된 경우가 많은 만큼, 배임죄의 범위를 조정해 과감한 경영 판단을 독려할 필요가 있다.
투자자가 이사회와 경영진을, 이사회와 경영진이 투자자를 적으로 보는 환경은 개선돼야 한다. 다 잘되자고 하는 것이다. 투자가 잘돼야 그 돈으로 경영하고, 경영이 잘되고 공정하게 분배돼야 투자수익이 난다. 투자수익이 나야 더 많은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고, 기업은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해 더 큰 사업을 할 수 있다.
기업 성장 없는 주주 성장 없고, 주주 성장 없는 기업 성장 없다. 그동안 왜곡된 구조 때문에 주주와 경영진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불신했다. 이제 경영진과 이사회가 대주주만을 위한 의사결정을 하지 말라는 법도 만들어졌다. 투자자와 기업인이 서로를 응원하고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을 기대해본다.
권순우 삼프로TV 취재팀장 soon@3pro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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