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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없는 노후 영구임대 아파트…“불 나면 그냥 죽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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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 6층 화재 현장에서 지난 3일 오전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 6층 화재 현장에서 지난 3일 오전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에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린 적이 있는데, 그때 ‘여기는 불나면 그냥 죽겠구나’ 생각했어요.”



박아무개(75)씨가 31년을 살아온 집, 서울 강서구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걱정스레 둘러보며 말했다. 박씨는 “여기는 다 혼자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들이라 무슨 일이 나면 피하기도 어렵고, 수십년씩 살다 보니 좁은 집에 짐도 가득하다”고 했다. 박씨가 화재를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여기는 이유는 또 있다. 박씨가 사는 곳을 포함해 1990년대 초반에 지어진 영구임대아파트 단지 97%에는 스프링클러가 없기 때문이다.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호 정책’에 포함돼 1992년까지 건설됐던 영구임대 주택 거의 대부분에 초기 화재 진압에 결정적인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프링클러 의무설치 규정이 마련되기 전 지어진 탓인데, 화재 때 대피가 쉽지 않은 취약계층이 모여 사는 단지 특성을 고려해 재난에 대비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자료를 5일 보면, 엘에이치가 관리하는 영구임대아파트 14만551가구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3884가구(2.8%)에 그친다. 사실상 거의 모든 영구임대아파트(97.2%)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셈이다. 영구임대아파트 건설이 중단된 뒤 1996년 정도까지 지어진 50년 임대아파트 중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비중도 7.4%에 그친다. 모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기 전 지어졌기 때문이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현재 6층 이상 건물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규정하지만, 1992년 이전에는 11층 이상 아파트의 11층 이상에만, 1992~2004년에는 16층 이상 아파트의 16층 이상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됐다.



최근 발생한 대형 아파트 화재 상당수는 스프링클러가 없어 화를 키웠다. 지난달 17일 화재로 4명이 숨진 경기도 광명시 아파트도 화재가 발생한 1층 주차장에는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같은 달 2일, 8살·6살 자매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가 발생한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아파트에도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스프링클러가 없는 대형 아파트 단지에도 화재는 치명적인 위험인데, 고령자와 장애인 거주자가 대부분인 영구임대아파트의 화재는 더더욱 위험하다.



엘에이치 쪽은 한겨레에 노후 영구임대 주택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그린리모델링 사업을 통해 올해부터 영구임대 주택 전체에 간이형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다만 비용 부담과 집 천장을 뜯어내야 하는 공사의 어려움을 고려해 사업 완료 기간을 2030년으로 설정해뒀다. 가구당 100만원 정도인 간이형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이 재정으로 투입돼야 하는데 예산이 지속적으로 확보될지는 불확실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영구임대 주택은 ‘거대한 양로원’이라고 할 정도로 노인과 장애인의 비율이 높아 화재 위험에도 특히 취약하다”며 “임대주택을 관리하는 공사·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예산을 적극적으로 투입해 유사시 안전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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