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호씨가 구속됐다는 소식을 전하는 1971년 9월23일자 동아일보 지면 기사 |
‘이 사건 재심 청구를 기각한다.’
‘역용 공작’(간첩 누명을 씌워 이중스파이로 활용) 피해자 서병호씨가 살아서 마주해야 했던 법원의 재심 기각 결정문(2020년)을,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던 유족 역시 5년 뒤에 받아들어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우인성)는 지난달 10일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혐의로 징역 12년이 확정된 서씨 유족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유족은 서씨 수사 과정에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가 ‘중대한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재심 사유’라고 본 서씨의 재심 사건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정부의 공식 조사기구 결론을 외면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씨는 1970년대 초반 재일 유학생 출신을 간첩 혐의로 영장 없이 검거한 뒤 공작원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역용 공작’의 피해자다. 서씨는 1960년대 일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뒤 1971년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보안사는 서씨가 통일조선신문사에 입사해 통일연감 원고 번역을 담당하고, 조선인장학회에 가입해 장학금을 받은 점을 사유로 들었다. 보안사는 서씨가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공작원에 의해 포섭돼 국내로 잠입했다며 국가보안법·반공법 위반 혐의를 덮어씌웠다. 서씨는 보안사에 불법 연행돼 19일간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
“사실대로 대답했더니 갑자기 나무막대기로 나의 무릎을 구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참을 때리더니 개, 돼지 같은 짐승을 다루듯 내 손, 발을 묶어 그 사이로 막대기를 넣어 젊은 두 남자가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흔들었고 잠도 안 재우는 고문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간첩한 것이 없다고 계속 부인하자 얼굴에 물수건을 덮고서 그 위에 물을 부어 호흡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번갈아가면서 매우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서병호 씨가 생전 변호인에 한 진술 중)
서씨가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받아 허위로 한 진술은 그대로 법정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서씨는 1972년 징역 12년, 자격정지 12년을 선고받았고, 1983년 만기출소했다.
서씨는 2017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2020년 “판결문의 범죄사실 기재만으로 1971년 4월 초순경부터 9월경까지 불법체포·감금돼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피고인 진술만으로는 가혹행위 증명이 어렵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듬해 서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서씨의 딸은 진화위에 진실 규명을 요청했고, 진화위는 지난해 1월 서씨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서씨가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 불법 수사를 받고 공작원으로 활용됐다며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진화위는 이 과정에서 국군방첩사령부(옛 보안사)로부터 ‘역용 공작계획’ 등 문건을 확보했다. 보안사 내부 수사기록을 보면, 1971년 보안사가 대일 공작원을 통해 일본 유학생 서씨의 귀국 첩보를 입수하고, 서씨를 간첩 혐의 대상자로 검거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보안사가 심문 과정에서 서씨를 재일 대남공작원 상부를 유인하고 검거하는 데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전향서 및 서약서를 쓰게 한 정황도 드러났다.
하지만 진화위 결정에도 검찰은 서씨 유족이 낸 재심 사건에서 “진화위에서 수집한 증거들에 의하더라도 수사기관의 불법구금, 가혹행위가 확정판결에 준하는 정도로 입증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각 의견을 냈다. 법원 역시 서씨가 법정에서 했던 ‘수사에 협조했다’는 진술 등을 근거로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진화위 상임위원을 지냈던 이상훈 변호사는 5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당시 진화위가 폭넓게 조사하고, 공안 사건에 부정적인 위원들까지도 서씨의 감금, 가혹 행위를 다 인정했던 사건으로 기억한다”며 “특히 당시 보안사 자료를 다 확보해서 ‘역용 공작’의 특수성과 잔인성을 확인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진화위가 많은 시간과 인원을 투입해 조사를 거쳤음에도 법원에서 기록만 보고 재심 기각을 내려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서병호에 대한 불법구금의 정황이 있었음에도 수사 지휘 기관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채 기소함으로써 국민의 인권을 보호할 공익의 대표기관으로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법원은 서병호가 공판에서 가혹행위로 인해 허위자백한 것이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음에도, 임의성 없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기초로 해 서병호에게 유죄를 선고해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기관으로써 그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진실화해위 진실규명 결정문 중)
진화위는 결정문에서 과거 서씨의 수사와 재판 과정과 관련해 이같이 결론 내렸다. 서씨 유족은 재심에서 서씨에게 내려진 국가의 형벌이 맞는지 다시 한 번 다퉈봐야 한다고 호소했지만, 법원은 끝내 이를 거부했다. 서씨 유족은 법원의 재심 기각 결정에 즉시항고장을 제출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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