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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①중국에 대한 오판이 잉태한 일본의 실기

조선비즈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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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1978년부터 중국은 기나긴 고통의 장막을 걷어내고 개혁 개방 정책을 실행한다. 개혁 개방 기간 중국에서는 크고 작은 경제전쟁이 곳곳에서 벌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중 국가의 명운이 걸린 3번의 대규모 경제전쟁을 직접 경험한다. 규모는 워낙 대규모라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불행히도 우리는 1번의 성공과 2번의 실기를 경험했다. 우리에게는 분명 전승의 기회가 있었는데. 최종 전적 3전 1승 2패.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중국과 일본의 절묘한 이해 일치가 만든 한단지몽

1978년 덩샤오핑은 개방의 전초전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항상 대륙 진출에 환상을 품고 있는 일본은 정성을 들여 치밀하게 일정을 준비했다. 당시 초기 로봇 자동생산이 시작된 닛산자동차 기미쓰 공장을 견학했다. 아울러 신일본제철, 파나소닉 공장 등 덩샤오핑이 관심 있을 만한 현장 방문을 준비했다. 고속철도 신칸센을 이용하도록 하는 일정은 일본의 속셈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환심을 사서 대륙에 진출하고 싶은 욕망인 것이다. 덩샤오핑의 한마디가 곧 중국의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준비한 것이다.

덩샤오핑은 1920년대 유럽의 노동자 생활에서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저히 경험했다. 공산주의 이론대로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자의 생활은 더 비참해지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착취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직접 눈으로 본 세상은 천양지차였다. 빈곤에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현실은 노동자들이 멋진 자기 집과 자기 차를 소유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자기의 소득으로 여가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의 상황과 너무나 다른 자본주의 일본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모습을 본 것이다.

1978년 덩샤오핑(왼쪽)과 만난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1978년 덩샤오핑(왼쪽)과 만난 후쿠다 다케오 일본 총리./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



더욱이 닛산자동차의 생산 효율이 중국 제일의 ‘장춘1 공장’의 수십 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신일본제철, 파나소닉 공장을 시찰하고 신칸센을 타보고 자본주의 시장 발전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의 의지는 더 확고해졌다. 머릿속에 어떻게 하면 중국도 일본과 같은 경제 대국을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한다.

이러한 일본 측의 노력과 덩샤오핑의 자본주의 시장의 매력이 더해져 경제교류는 급속하게 진행된다. 1978년 중국의 바오산 철강과 일본 신일본 제철이 합작사업에 서명한다. 일본은 중국 진출에 대한 호기라고 생각하고 다방면으로 중국을 지원하기로 내부 결정한다. 공산국가인 중국 최고 지도자이자 실권(實權)을 가진 덩샤오핑이 결정한 협력 사업이라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중국 공산당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오판으로 절호의 기회를 실기(失機)한다. ‘잃어버린 30년’고통의 시간을 단축할 기회를 실기한 것이다.

중국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의 배신?

당시 중국 지도부 내부는 일본의 자체 판단과 달리 덩샤오핑의 일방적인 독주 체제가 아니었다. 개방파 성향의 덩샤오핑 지지자와 보수파 성향의 리셴녠 부주석의 지지자로 양분되었다. 특히 보수파는 개혁 개방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개혁 개방은 중국의 빈부격차를 유발하여 국가를 분열시켜 결국 공산당을 멸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논지였다. 아울러 1980년 초 극심한 자연재해로 농업 부문의 피해는 국가의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이에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리셴녠은 일본과의 합작사업에 대한 자금지출을 반대하며 사업의 연기나 철회를 주장한다. 덩샤오핑도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하여 양보하게 된다. 이에 일본과의 합작사업은 난관에 봉착한다. 결국 1981년 중국은 일방적으로 일본에 합작 계약을 취소한다.


일본은 중국 공산당을 일사불란한 결정 체계를 가진 덩샤오핑의 독재국가 정도로 생각했다. 덩샤오핑의 결정이 곧 국가 정책일 것으로 오판한 것이다. 합작사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조만간 멋진 결과물이 탄생할 걸로 기대했다. 일본은 중국 공산당 내부의 복잡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단순히 덩샤오핑이 약속을 일방적으로 폐기한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이런 배신감으로 일본 정·재계 지도자들의 중국 공산당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한다. 우여곡절 속에 1985년 합작사업의 결과로 강철 생산을 시작하나 이미 신뢰는 금이 간 상태가 되었다.

여기에 1985년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방문과 1992년 조어도 영토분쟁은 중국인들의 반일 감정에 불을 지피게 되었다. 중국과 일본은 치명적인 불신의 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이는 일본기업의 중국 진출 올스톱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이제 중국 공산당은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인식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우리 기업가들이 중국 진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 어부지리로 중국 시장을 선점하여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얻는 국가가 탄생한다.


[편집자주]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는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삼성 중국 지역 전문가로 대륙을 돌면서 중국과 인연을 맺은 후, CJ(제일제당) 중국사무소 대표를 지냈으며,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했고, 현지에서 화장품 유통업체 카라카라를 창업하기도 했다. 2012~2017년에는 중국 50대 민영기업 신화련그룹의 투자수석고문을 역임한 바 있다. 이춘우 특임교수의 칼럼은 3주에 한번씩 연재될 예정이다.

이춘우 호서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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