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윤 어게인’ 꽉 찬 법정에서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원문보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으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오전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으로 출석하자 지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내란 우두머리 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으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오전 공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으로 출석하자 지지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을 연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방혜린 | 군인권센터 국방감시팀장



올해 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내란죄 재판 준비기일을 시작으로 현재 재판 중인 거의 모든 내란 재판을 방청했다. 처음에는 사상 초유의 내란죄 재판이니 방청객이 많을 것이라 예상하고 자리를 맡으러 서둘러 재판을 보러 갔다. 첫 한두번은 그래도 방청객이 꽤 되더니, 급격히 줄기 시작했고, 몇주가 지나니 이제는 방청석 앞줄을 채우던 기자들마저 빠졌다. 삽시간에 비워진 관심을 내란 지지 세력이 빠른 속도로 메우기 시작했다. 지금 내란죄 재판 방청을 가보면 꼭 윤석열 재판이 아니더라도 ‘윤 어게인’(YOON AGAIN) 같은 슬로건이 적힌 시뻘건 티를 입은 사람들이 가득 앉아 소란을 피우며 사사건건 재판 진행을 방해 중이다. 진행이 더딘 내란죄 재판은 짧아도 올 12월, 자칫하면 내년 초까지 1심이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군대가 좋아하는 말 중에 ‘신상필벌’(信賞必罰)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 그대로 ‘공로가 있으면 상을 내리고 죄를 지었으면 벌을 내려야 한다’는 뜻이다.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는 ‘엄형주의’에 기반한 강력한 법치주의를 지향했다. 한비자가 신상필벌을 강조한 건 공을 세운 신하에게 상을 주어 동기를 부여하고 따르게 하는 것에 주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법이라는 기준에 따라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이에겐 반드시 합당한 벌을 내린다는 사회적 약속을 통해 나라의 질서를 세워야 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신상필벌은 단순히 잘하면 상, 못하면 엄벌이 아닌 “법과 규정이 정한 대로 될 것이다”라는 약속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상은 따라온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며칠 전 안규백 신임 국방부 장관이 취임 뒤 첫 현장점검으로 12·3 내란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로 동원됐던 특수전사령부 예하 제3공수여단을 방문해, “그동안 오직 국가와 국민만을 위해 충성을 다해온 특전사 장병들의 자부심과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타까웠다”며 위로를 전했다. 제3공수여단은 1979년 부마민주항쟁, 12·12 군사쿠데타, 5·18 민주화운동 유혈진압과 학살까지, 군대가 동원되어 우리나라 시민과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은 현장마다 등장한 ‘가해 전문’ 부대다. 원칙대로라면 진작에 역사의 심판을 받고 사라져야 했을 부대에, 국방부 장관이 취임 뒤 가장 먼저 가서 위로했다는 것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혹서기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며 근무하는 부대가 3공수뿐인가?



지난겨울 기소된 이들조차 누구 하나 법의 이름으로 ‘필벌’ 된 이가 없는데, 벌써부터 “불법 부당한 지시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간부들에 대한 특진을 추진하라”는 말이 대통령 지시로 내려오고, 국방부 장관이 첫 현장 행보로 공수부대를 선택했다는 것은 신상필벌의 기본 이치에 전혀 맞지 않는 행보다. 다른 부처엔 계엄 상황에 내려온 소집 지시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버린 사람도 있는 마당에 ‘소극적으로 임했다’는 것이 공적이 될 수 있는가도 의문이다. 행동의 적극성 유무를 떠나 ‘임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으므로,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행위에 동참한 자로서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은 공직자의 가장 기본자세다. 동원된 군인들 역시 헌법과 법규를 준수하겠다는 임관 선서하에 공무원이 된 공직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던 광장에서의 긴 겨울을 지나, 2025년 4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새 정부 출범, 이와 동시에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 3개 특검으로 모든 것이 정상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제대로 처벌을 받은 이가 8월이 된 지금도 한명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매일 특검발 속보가 뜨고, 윤석열이 다시 구속됐다 하여 ‘곧 청산되겠구나’ 하며 착각해선 안 된다. 다 끝났다는 착각에 공이랍시고 치하하며 하하, 호호하는 사이, 숨어 있던 내란의 싹이 어디서 어떻게 움틀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화전(火田)을 가꿀 때, 모든 것을 태운 뒤 잿더미에서 비로소 새로이 씨를 뿌리는 것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통일교 자금 관리
    통일교 자금 관리
  2. 2박원숙 컨디션 난조
    박원숙 컨디션 난조
  3. 3박지훈 정관장 삼성 3연승
    박지훈 정관장 삼성 3연승
  4. 4윤정수 원진서 결혼
    윤정수 원진서 결혼
  5. 5김장훈 미르 신부 노출 사과
    김장훈 미르 신부 노출 사과

한겨레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