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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사람은 '이마', 왕십리 사람은 '목덜미'가 검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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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시 산황산 파괴에 어린 비정과 서정 ②]
오마이뉴스

잘 익은 가을 사이로 대파 한 단 싣고 가는 산황동 노인. ▲ 평화롭게 농사 지으며 살 권리를 골프장, 자동차전용도로라는 몽둥이로 두들겨 패는 고양시장과 정치가들. ⓒ 류시훈



예로부터 마포 새우젓과 함께 왕십리 배추는 유명했다. '장안에 변소는 왕십리 배추 장수가 다 퍼간다'는 말이 나올 만큼 왕십리는 서울에서 소비되는 무, 배추 생산지로 이름이 났다.

그러나 입맛 아는 사람은 채소하면 일산을 으뜸으로 꼽았다고 한다. 일산열무를 필두로 특히 산황동에서 길러낸 채소가 선호되었다.

"산황동 채소가 왕십리 채소보다 먼저 팔렸다"는 마을 노인에게 채소만 보고 어떻게 지역을 구분하는지 묻자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채소 뿌리에 황토가 묻어 있으면 그게 산황동 채소야. 땅이 황토로 되어 있어서 산황산이고 산황동이잖아."

마을 가운데 난 포장도로의 이름이 '마찻길'인 것도 서울의 배후 농업지였던 옛 시절을 짐작케 한다.

마찻길은 과거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돈을 마련하고 땅을 조금씩 내놓아 만들어졌다. 20km 넘는 서울까지 나귀와 농부가 새벽의 첫 걸음을 내딛던 길이기도 했다.

현재 산황동은 일산의 백석동, 마두동에서 1km 남짓 거리면서 고양시 지도를 펴면 딱 중심에 자리 잡은 '도심의 바이오 지역' 이자 '생태 마을'이다. 고양시, 파주시 150만 시민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된 고양정수장도 이 마을에 있다.

'도심 바이오 마을'로 보호될 곳, 천덕꾸러기 취급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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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선 부분이 산황산의 남은 24만㎡(8만평) 골프장 증설 부지. ▲ 사업자는 현재 부도 후 청산 상태로 부지 확보를 전혀 하지 못 했다. 연필선으로 표시한 지역이 100여 가구 주택이 있는 주거 지역이며 초록색 나무 모양이 경기도 보호수 1호 느티나무다. ⓒ 조정



이곳 농민들이 골프공 타격, 조명 피해, 농업용 용배수로 오염, 지하수 부족 등을 겪게 된 것은 2010년부터다. 산황산 북쪽 면에 생긴 '9홀 골프장'이 문제였다.

풍부한 지하수를 저장한 산황산(약 47만㎡, 약 15만 평)이 수조 역할을 해주어 논밭이 가뭄을 몰랐을 뿐 아니라, 콩나물 공장이며 양조장도 이곳의 깨끗한 지하수를 의지해 운영되었던 마을이다.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지하수 부족과 오염이 시작되었고, 콩나물 공장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갔다. 마을 전체와 양조장에는 수돗물이 연결되었다.

나주 임씨, 인동 장씨, 하동 정씨가 주로 사는 이 마을의 수난사는 공익을 빌미로 희생된 농촌 마을의 전형을 보여준다. 30여 년 전 인동 장씨 댁으로 시집 온 마아무개씨의 말이다.

"결혼했을 때 친정어머니가 와보고 우셨어요. 이런 적적한 산골짜기에서 어떻게 사니 하시면서요. 그런데 어느 날 외곽순환도로와 송전탑이 들어왔어요. 그거 막아보려고 많이 싸웠죠. 제 남편은 송전탑 위에 올라가서 시위까지 했어요. 공익시설이라고 할 수 없는 골프장까지 고양시가 허가를 해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안방 바로 옆으로 골프장 붙는 집이 30가구나 돼요."

주민들은 사람살이를 외면한 행정을 아프게 기억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가'라고 씁쓸하게 물으면서도 외곽순환도로 소음, 지하로 들어가야 될 송전탑, 주민들 안방 옆까지 증설하겠다는 골프장 사이에서 여전히 농사를 짓는다.

'소농(小農) 육성'으로 토지 회복과 식량 전쟁에 대응하는 유럽, 선진국과 달리 고양시는 '무분별한 도시 개발'에 집중했다.

"나무 옆에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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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회생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축사하는 백석동 주민 신석현 목사 ▲ 느티나무 밑둥 치료된 부분은 본래 또 하나의 주가지 자리다. 1945.8.15. 해방되던 날 새벽에 벽력같은 소리를 내며 오른쪽으로 뻗었던 가지가 찢겨 나갔다. 마을 어른들은 나라가 둘로 나눠질 징조였다고 전해준다. ⓒ 조정



5일 오전 11시 태풍 피해에서 회복된 느티나무의 건재에 감사하는 '고천제(告天祭)'가 열렸다. 마을 주민과 시민들이 산황동 느티나무 그늘에 모였다.

고양시장과 국토부장관이 여전히 마을 분해를 계획하는 곳, 주민들이 오랫동안 거부해도 지역구 국회의원 이하 지자체 의원들이 침묵하는 곳.

고천제에 모인 이들은 개발 사업의 먹잇감으로 던져진 이 마을에 화해의 날이 오기를 바라며 "시내 사람들이 우리 마을에 와서 휴식을 얻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들꽃처럼 힘을 얻기를 바랐다. 이어 마을 분들은 고양파주 아이쿱 생협이 보내온 막걸리를 느티나무에 뿌리며 "오래오래 천년, 이천년 더 살라"고 기원했다.

고천제 일주일 전 마을은 매년 추수 후에 올리는 당제를 지냈다. 당제 터는 산황산의 남쪽 봉우리로 과거에는 그곳에서 멀리 인천 소래가 보였다고 한다. 산 북쪽에는 산신제 터가 있다. 지세(地勢)의 균형을 잡는 풍수지리적 의도였을까? 조선 도읍지를 물색하던 무학대사가 산황동을 염두에 두고 느티나무를 심었으나 풍수지리를 이유로 포기했다고 한다. 산황산에서 서남쪽 400여 m 앞의 앉은 빗산이 시야를 가로막아서 산황동에서는 큰 인물이 못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스듬히 앉아 빗산인가, 얼레빗 모양을 닮아 빗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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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길의 가을 빛 ▲ 빈 터였던 곳에 40년 전부터 나무를 심고 가꾸어온 손길이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 조정



재미난 이야기도 많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많은 산황동은 토박이 지명이 여전히 사용된다.

백마역과 곡산역 뒤쪽이 모두 산황동인데 백마역 쪽에 접한 주거지와 빗산 주변의 들판을 '민마루'라고 부른다. 느티나무 앞집 미정이 할머니는 70년 전에 민마루에서 도촌천 건너 '당점말' 임씨 댁으로 시집왔다.

산자락 1.2km에 걸쳐 집들이 모여 앉은 마을 곳곳의 이름이 곱다.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모인 '당점말'(당제를 지냈던 당젯말의 편한 발음으로 추정), 포장도로가 된 '마찻길'의 고개 앞은 '고갯말', 가끔 고라니와 마주치는 고개 건너 마을회관 주변은 '모당말', 마을버스 다니는 고샅 쪽은 '앞말'이다. 모당말에서 동쪽 길로 가면 산신을 모신 수월암 지나 '온수골'이 나온다. 따뜻한 샘이 솟았던 곳이다.

온수골 인근에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를 만든 정지영 영화감독이 거주했던 정원집이 있다. 정 감독의 누님 내외가 40년간 빈 땅에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산황동 명물인 '정원길'이 되었다.

무익하기에 본질적인 예술처럼, 슴슴하고 무던한 맛의 경기도 김치처럼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지명이 작은 마을에 소복하다.

'일산 채소장수와 왕십리 채소장수를 구분하는 법'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산 채소장수는 이마가 검고 왕십리 채소장수는 목덜미가 검었대. 왜 그런고 하니 일산은 서쪽이고 왕십리는 동쪽이잖아. 일산 사람은 아침 해 보며 서울 가고, 오후에 강화 쪽으로 지는 해 보고 돌아오니까 이마가 그을리지. 왕십리 사람들은 아침 해 등지고 서울 왔다가 석양 등지고 돌아가니까 목덜미가 까만 거야."

이마가 까맸다던 그들의 자손이 오늘도 산황동에 살며 말한다.

"우리 마을을 골프장이나 자동차 전용도로로 더 이상 찢지 마세요. 도시 사람들은 우울증도 많고 피곤하잖아요. 우리 마을이 생태 체험 마을이 돼서 시내* 사람들이 여기 와서 휴식을 얻으면 좋겠어요."

* 산황동에서는 길 건너 일산신도시나 화정 아파트 단지를 시내라고 부른다.


조정 기자(orengrium@naver.com),문성준 기자(just-s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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