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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코피노들]①가난과 외로움만 남기고 떠난 ‘나쁜 아빠’…그는 ‘한국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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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피노’ 지우(오른쪽)와 어머니 웰리바이브가 지난 8월6일 필리핀 올롱가포의 집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위 사진).제닐린이 8월7일 마닐라 북부 빈민촌 나보타스의 집에서 코피노 아들 진민을 업은 채 인터뷰하고 있다. 리듬오브호프 제공


천장 물 새고 음식엔 벌레까지

아이는 거미 팔아 교통비 마련

코피노 가족에 일상이 된 가난

다른 외모에 학교선 왕따 당해

아빠 찾아서 도움 요청했지만

전화번호 바꾸고 ‘협박’까지

“당신이 여자가 있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아들은 잊지 말아주세요”


필리핀 마닐라에서 북서부로 약 80㎞ 떨어진 올롱가포. 한 빈민가 야산 옆 천막으로 덮인 집에는 지우(11)가 산다. 지우의 성(姓)은 남씨. 지우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코피노다.

1990년대 후반부터 유학생, 기업 주재원, 은퇴자, 관광객 등 한국인들이 필리핀으로 몰려들었다. 한국보다 싼 물가, 천혜의 자연이 한국인들을 끌어들였다. 한국 남성들은 필리핀 여성들과 만났다. 하룻밤 만남도 갖고, 연애도 했다. 그 사이 아이들이 태어났다. 한국 남성들은 책임지지 않았다. “애를 지우라”고 강요했다.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 연락이 닿아도 돕지 않았다. 모른 척했다. 한국 정부도, 필리핀 정부도 ‘우리 아이들’이 아니라고 했다.

코피노가 국제 문제로 대두된 지 10여년이 흘렀다. 달라진 건 없다. 아이와 엄마들의 어려운 삶은 이어진다.

■ “친구에게 거미 팔아 교통비 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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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 집을 찾은 지난 8월6일 필리핀은 우기였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마닐라에서 차로 약 3시간을 달려 올롱가포의 지우네 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서 지우와, 지우의 이복동생 저스틴을 안은 어머니 웰리바이브(37)가 미소를 띤 채 기자 일행을 맞았다.

지우는 띠를 매지 않은 태권도복을 입고 있었다. ‘태권도를 보여달라’는 말에 두 손으로 주먹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발차기를 두어 번 했다. 태권도복은 얼마 전 코피노단체에서 얻었다. 돈이 없어 태권도를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띠가 없다.

사진 촬영을 하던 도중 지우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웰리바이브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모자는 부둥켜안고 울었다. “많은 사람이 왜 집에 왔는지 지우도 알겠죠. 자기 처지가 실감이 나서 그런 게 아닐까요.” 취재에 동행한 미디어봉사단체 ‘리듬오브호프’의 한 단원이 말했다. 지우는 이내 울음을 그쳤다. 입도 함께 닫았다. 어머니가 인터뷰하는 동안 집 앞 창고터에서 동생과 가만히 비를 피했다. 지우의 기분을 풀어주고 싶었다. 젤리와 레몬맛 사탕을 급히 건넸다. 지우는 작은 손에 사탕갑을 꽉 쥔 채, 야산에서 비를 피하러 다가오던 희고 큰 고양이 이름을 불렀다. ‘마야’는 지우의 유일한 친구다.

지우네 집은 주인집 바로 옆에 붙어 있다. 2년 전 주인의 호의로 집을 지었다. 이 집도 없던 시절 웰리바이브는 노래방에 달린 쪽방에서 지우를 키웠다. 그는 출납원으로 일했다. 그곳에 비하면 이곳은 안식처이지만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집은 회색 콘크리트 블록이 둘러싼 2~3평 남짓한 공간이다. 천막과 얇은 패널로 덮은 지붕은 긴 우기를 버틸 재간이 없다. 방 안에서 인터뷰하는 내내 머리 위로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빗소리가 더 커지자 사람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인터뷰를 잠시 멈춰야 했다. 장판이 깔리지 않은 시멘트 방바닥 위에는 때 묻은 이부자리 두 개가 겹쳐 깔려 있었다. 그 주변을 개미들이 지나다녔다. 천장에 매단 빨랫줄에는 옷가지들이 잔뜩 널려 있었다. 이들을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사물은 낡은 TV 한 대였다.

집 앞마당에는 가스레인지와 식기 두 개만이 덩그러니 놓인 간이 부엌이 있었다. 모닝빵 몇 개와 줄콩, 돼지껍질튀김볶음이 보였다. 작은 개미들이 돼지껍질튀김볶음이 담겨 있는 프라이팬 안으로 기어갔다. 화장실은 없었다. 지우네는 주인집 화장실을 쓰는 대신 청소해준다. 부엌 앞 작은 수도꼭지에서 몸을 씻는다.

지우네는 이 지역에 연고가 없다. 가족이나 지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 웰리바이브는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돈을 벌려고 길가에서 빵과 채소를 판다. 돈은 항상 부족하다. 지우는 이 상황을 잘 안다. “지우는 효자예요. 하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냥 울기만 할 뿐이에요. 지우는 착해서 상황을 이해하고 있어요.” 지우가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은 맥도널드와 졸리비 햄버거다.

웰리바이브는 지우에게 매주 150페소(약 3470원)를 준다. 학교 교통비다. 그가 버는 돈은 한 달에 500페소(약 1만1570원)다. 교통비도 못 줄 때가 많다. 돈이 떨어진 날 지우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까지 걸어간다. 교통비를 벌려고 거미를 잡아 학교 친구들에게 판다. 학교 생활은 행복하지 않다. 친구들은 지우에게 “머리가 크다” “중국인이냐, 한국인이냐, 괴물이냐”며 이국적인 외모를 두고 놀려댄다.

지우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려면 학교를 열심히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마치면 혼자 지낸다. “지우는 항상 방에만 있다”고 웰리바이브가 말했다.

웰리바이브는 2006년 마닐라의 콜센터에서 일하다 친구 모임에서 남편 남모씨(58)를 만났다. 남씨와 만난 지 1주일 뒤 민다나오섬으로 갔다가 6개월 후 지우를 얻었다. 6개월 뒤 남씨는 웰리바이브를 떠났다. “세부에서 다른 여자를 만났어. 그 여자가 임신했어.” 지우가 태어난 지 한 달 뒤 남씨가 웰리바이브에게 전한 말이다. 남씨는 항상 메시지를 보낸 뒤 웰리바이브가 답장을 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남씨는 웰리바이브에게 “인지 청구·양육비 청구 소송을 중단하면 매달 5000페소(약 11만4500원)를 주겠다. 단 이 사실을 변호사에게 말하면 소송비를 물도록 하겠다”고 협박했다.

지난 3월 마지막 연락 내용이다. 코피노단체에 따르면 남씨는 한국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한다.

웰리바이브는 지우를 잘 키우려는 일만 생각한다. 지우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를 바란다. “지우가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있고 가족을 도울 수 있도록 교육이 가장 필요해요.” 정부도, 가족도 기댈 곳이 없는 코피노 어머니들은 교육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다리라고 믿는다.

■ “아들 사랑하냐? 왜 번호 바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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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같은 집 지우와 웰리바이브 모자의 집. 리듬오브호프 제공


마닐라 북쪽의 빈민촌 나보타스는 세계 3대 슬럼가 중 한 곳이다. 집을 짓거나 빌릴 돈이 없는 사람들이 대로변이나 다리 아래에 판자 등으로 집을 짓고 산다. 바닷가에는 수상가옥이 빼곡하다. 땅을 사거나 집 지을 돈이 없는 이들이 물가까지 밀려난 것이다. 지난 8월7일 찾은 나보타스 바닷가에는 각종 오물들이 고여 있었다. 흙색 바닷물은 악취를 풍겼다. 아이들은 다리 위에 놓인 나무판자와 녹슨 철봉 위를 놀이터 삼아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녔다. 바닷물에서 무언가를 주워 입에 넣기도 했다. 그중 얼굴이 가장 하얀 아이가 보였다. 코피노 진민(4)이다.

진민의 어머니 제닐린(39)은 대단한 가수였다고 한다. 제닐린의 어머니 프레실라(67)가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프레실라는 제닐린의 노래를 들어보라고 권했다. 제닐린은 2013년 방영된 한국 드라마 삽입곡을 한 구절 불러줬다. 제닐린은 2013년 11월부터 약 2년간 충북 제천의 나이트클럽에서 가수로 일했다. 이주노동자였다. 클럽 이름은 ‘뻐꾸기’였다.

남편 김모씨(53)와의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제닐린은 첫사랑을 떠올리는 소녀처럼 상기됐다. “일을 나갔던 첫날, 직장 동료였던 아들 아빠는 저를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어느 날 갑자기 롯데리아 햄버거와 치킨을 사다줬죠. 전 한국말을 못했기 때문에 친구를 통해 ‘왜 나에게 이런 음식을 주냐’고 물었어요. 그는 ‘그냥 선물로 주고 싶다’고 말했죠.”

2013년 겨울 김씨는 자신의 휴대폰 케이스에 넣어둔 돈을 제닐린에게 건넸다. 제닐린이 신은 신발이 추워 보이니 새 신발을 사라는 것이었다. 2014년 2월14일 밸런타인데이에는 제닐린에게 초콜릿을 줬다. 김씨는 “좋아해요”라고 고백했다. “나 아직 사랑 몰라.” 제닐린은 자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제닐린은 김씨에게 “지금까지 당신 많이 사랑했어요”라며 화답했다.

김씨와 만난 지 1년 뒤 제닐린은 김씨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다. 김씨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했다. “한국에 남고 싶으면 아기를 없애고, 아니면 필리핀에 가서 낳아라.” 제닐린은 가톨릭 신자였다. 낙태하고 싶지 않았다. 2014년 11월 홀로 필리핀에 와 진민이를 낳았다. 김씨와의 연락은 2017년 2월 진민이의 두 번째 생일을 끝으로 끊겼다. “전 그에게 말했어요. 당신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겨도 나는 괜찮다고. 하지만 당신 아들은 잊지 말아달라고.”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닐린은 울음을 터뜨렸다. “여보, 미안해. 나 인터뷰했어. 나 생각나지? 아들이랑. 아들 사랑하냐? 왜 전화번호 바꿨어. 왜 말 안 했어. 여자친구 아들 4살이에요. 나 혼자 맨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만약에, 마음 있으면….” 줄곧 영어를 쓰던 제닐린은 이때만큼은 서툰 한국어로 말했다.

진민이에게도 아빠의 공백은 크다. 제닐린은 얼마 전 진민이를 데리고 맥도날드에 갔다. 진민이는 다른 가족의 아빠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민이가 아빠에 대해 물을 때면 제닐린은 김씨의 사진을 보여준다. 프레실라가 말했다. “김씨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왜냐하면 내 딸이 좋지 않으니까. 내 딸은 울고 있어.”



양육에는 돈이 필요하다. 제닐린은 페이스북으로 출장 마사지 일을 얻곤 하지만 일감이 별로 없다. 3개월간 일이 없었을 때도 있었다. 가수를 하기에는 나이가 많다. 필리핀은 일자리가 부족하다. 가족 중 돈을 버는 건 어부로 일하는 여동생 남편이 전부다. 그렇다 보니 제닐린 가족은 나보타스 국유지에 무허가로 지은 집에서 살아간다.

진민이도 다른 코피노처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이 때문에 유치원을 그만뒀다. 제닐린은 “진민이 볼에 펜으로 낙서가 돼 있었다. 너무 빨갛게 됐다”고 했다. 제닐린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들이 한국 국적을 얻어 한국으로 가면 좋겠어요. 제 아들은 한국의 피를 갖고 있으니 그게 맞는 거잖아요. 제 아들이 저처럼 되지 않길 바라요. 인터뷰하는 이유는 오직 제 아들의 미래를 위해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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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링크 주소로 들어가시면 코피노 가정을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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