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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열전]"욕설은 기본, 車상방뇨까지"…지하철 종점엔 취객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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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막차 정리’ 담당…교통공사 직원과 동행記
차상방뇨에 "네가 뭔데 깨우냐" 욕설 세례
올 상반기 서울 지하철 ‘막차 취객’ 민원 286건
직원들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불토(불타는 토요일)’인 지난 18일 자정.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막차 안. 소변 지린내가 자욱이 퍼졌다. "네가 뭔데 그러냐"는 고성이 울렸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인턴기자는 서울교통공사 직원 6명과 함께 신도림역 ‘막차 정리’ 업무를 함께 해봤다. 막차 정리는 종점인 신도림역에 들어온 막차 객실을, 내리지 못한 시민들을 안내하고 분실물을 수거하는 역할을 한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정다운


현장에는 종점 안내 방송이 수 차례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객차마다 승객 1~2명 이상은 꼭 종점인지 모르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어폰을 착용해 방송을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얼큰하게 술에 취한 ‘취객’이었다. 직원들은 "술에 취한 승객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욕설은 기본, 車상방뇨까지…"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신도림역에 도착하는 막차는 총 25대다. 24대는 막차정리 업무를 끝낸 뒤, 양천구 신정동 차고지로 들어간다. 나머지 한대는 막차정리 업무를 완료한 뒤 역에서 약 5시간 후 대기 후, 첫 차로 출발하게 된다.

첫차로 출발하게 될 막차가, 신도림역으로 들어오자 김상우(59) 신도림역 부역장과 함께 열차 내부로 투입됐다. 열차에 들어서자마자 술에 취해 의자 칸막이에 기대 잠들어 있던 한 남성이 보였다.

인턴기자가 남성의 오른쪽 팔뚝을 힘차게 흔들자, 게슴츠레 눈을 뜨고 ‘뭐야 종점이냐’며 혼잣말을 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이 열차에만 ‘하차하지 않은 취객’이 10여명. "막차입니다 내리세요" "가방 챙기세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일부는 "○○구로 가는데 어떤 버스를 타야 하냐"고 묻기도 했다.

조선일보

지난 17일 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막차 안에서 한 취객이 차상방뇨를 하고 있다.


4호칸에 들어서자, 소변 냄새가 풍겼다. 한 남성이 지하철 의자와 문 사이에 몸을 틀고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양다리 사이에서 거센 물줄기가 쏟아졌다. 차(車)상방뇨였다. 김 부역장이 다가가 "여기서 뭐 하시는 거냐, 내려 달라"고 하자, 욕설이 돌아왔다. 그는 "오줌 싸는데 왜 차를 멈췄냐, 시X, 네가 차를 멈췄냐"고 되레 소리쳤다.

비슷한 시각, 2호선 신정네거리·양천구청역 방향에서 들어온 지선(支線) 열차에서 ‘막차 정리’를 하던 공익요원 정승환(23)씨도 취객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열차 안에서 잠들어 있던 한 남성을 깨웠더니 "네가 뭔데 나를 깨우느냐" "왜 건드리느냐"며 정씨를 향해 손가락으로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시비를 걸어온 것이다.

개찰구 앞에서도 취객과의 전쟁이 펼쳐졌다. 공사 직원 정동환(28)씨가 한 남성에게 막차가 끊겼으니 개찰구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안내하자, 그는 "내가 유명 로펌 변호사인데, 막차 안내 방송 똑바로 해라"며 "고소하겠다"고 화를 냈다. 별다른 이유 없이 분노를 쏟아낸 그는 역무실까지 찾아와 10여분 더 난동을 부리다 집으로 돌아갔다.

◇진상 취객 상대는 일상…"밤마다 토사물 치워" 고역

공사 직원들은 이런 상황이 "일상적"이라고 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서울 지하철 막차에서 난동을 부려 다른 승객이 민원을 넣은 사건은 총 286건이다. 공사 직원이 먼저 취객을 발견해 자체적으로 처리한 이날 사건들은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진상 취객’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다.

직원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김 부역장은 "술에 취한 승객들은 아무리 말을 하고 설명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자식보다 한참 어린 젊은이들이 반발하며 욕할 때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고 했다. 직원 정동환씨도 "이제는 진상 취객이 일상이라 어느정도 적응됐지만, 신입 때는 스트레스 탓에 밥 먹고 소화도 잘 안 됐다"고 했다.

조선일보

본지 권유정 인턴기자가 지난 17일밤부터 18일 새벽 사이,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 서울교통공사 직원과 함께 ‘막차 정리’ 일을 하고 있다.


지하철 미화원 이정옥(63)씨는 "막차 청소를 하다 보면 매일같이 토사물을 치운다"며 "토사물은 휴지로 한 번 닦고, 밀대로 물청소를 한 다음 약품을 뿌려 냄새까지 제거해야 해 청소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인턴기자가 탔던 신도림역 종점 열차 내부에선 다행히 토사물이 없었지만, 역사 화장실 곳곳엔 토사물이 가득했다.

공사는 승객이 직원에게 심한 욕설이나 폭언·폭행을 할 경우, 경찰에 인계하고 있다. 철도안전법은 지하철 직원 등 철도종사자에게 폭행, 협박을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김 부역장은 "역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직원들에게 욕설을 자제해 달라"고 했다.

[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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