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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치킨 사오라고만 했어도…” 5가족 꿈 앗아간 만취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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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사갈까’ 퇴근길 엄마
10분 뒤 횡단보도서 치여
엄마 잃은 세 딸과 남편
“윤창호 비극 되풀이 분노”
경향신문

고 백정선씨 발인식이 열린 26일 오전 전북대 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들이 백씨 영정을 옮기고 있다.


“사랑하는 딸 엄마 회식 끝났어. 집 앞인데 치킨 사갈까?” “엄마, 나 다이어트 중이니까 안 먹을래요. 얼른 오세요.”

삼례초등학교 교사 백정선씨(55)가 딸과 나눈 대화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난 18일 오후 10시 전북 전주시 진북동 우성아파트 앞 왕복 4차선 도로 한편. 백씨가 세 딸과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접어든 순간 질주하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그를 덮쳤다. 백씨의 몸은 허공에서 28m가량 날아간 뒤 아스팔트 위에 떨어졌다. 사고를 목격한 시민이 도로에 있던 백씨의 휴대폰으로 방금 통화한 번호로 전화해 “사고가 났으니 빨리 와보라”고 알렸다. 한달음에 사고 현장으로 달려온 가족들은 백씨의 처참한 모습에 절규했다. 엄마를 부둥켜안은 딸은 “10분 전에 치킨만 사오라고 했어도…”라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119구급대에 의해 전북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백씨는 수차례 뇌 봉합 수술을 받았으나 의식을 찾지 못했다. 자매처럼 지낸 세 딸과 남편을 놓지 못해 일주일간 사투를 벌였던 그는 지난 24일 끝내 숨을 거뒀다. 백씨의 가족은 다음달 해외여행을 예약해둔 상태였다.

경찰에 체포된 SUV 운전자 이모씨(28)는 알코올수치 측정 결과 운전면허 취소기준을 훨씬 초과한 0.194%의 만취 상태였다. 목격자 박모씨는 “사고차량이 과속으로 달리다 횡단보도를 건너오던 행인을 친 뒤에야 멈춰 섰다”며 “달려가 보니 운전자는 만취 상태였다”고 전했다.

빈소에는 고인의 생전 모습을 기리는 동료 교사와 제자들의 조문행렬이 줄을 이었다. 체육을 전공한 고인은 동료와 제자들에게 싹싹하고 배려감 넘치는 동료이자 스승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제자들은 25일 영정 앞에서 “엄마같이 다정하게 가르침을 주셨던 선생님께서 음주운전 차에 사고를 당하셨다는 게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다”며 흐느꼈다. 동료 교사 정모씨는 “구김살 없는 미소로 학교 현장을 밝게 빛내줬던 분인데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서 “비통하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딸 가영씨는 “한 사람의 실수로 인해 우리 가족의 단란한 꿈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면서 “‘윤창호법’이 시행되면 뭐하겠나. 음주사고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은 또 나올 것이고 그때마다 슬픔에 잠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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