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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언니들이 화장실 갈 때가 제일 무서웠다, 또 시작될까봐”…‘스승’이란 이름의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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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관련 기사를 쓸 때마다 고민이 깊습니다. 선정성에 빠지지 않으면서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충실히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하고요. 피해자에게는 질문 하나도 조심스럽습니다. 잊고 싶은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니까요. 서울의 한 무용 연습실을 빌려 피해자 A(23)씨를 만났을 때, '언제든 불편하면 인터뷰를 중단할 수 있고, 가해 사실을 억지로 떠올릴 필요는 전혀 없다'고 몇 번이나 당부했던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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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시간가량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A씨는 때때로 눈물을 터트리고 목소리가 떨릴 때도 그때의 기억을 막힘없이 또렷하게 설명했습니다. 살다 보면 어떤 순간은 당시 맡은 냄새와 불어오던 바람의 방향 따위까지 선명하게 기억될 때가 있죠. A씨에게 남은 감각은 '후각'이었습니다. 부모님처럼 따랐던 무용가 선생님 류 모(49)씨가 자신을 억지로 추행하던 순간, 훅 끼쳐오던 고춧가루와 해물 냄새, 커피 냄새와 담배 찌든 내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날은 류 씨에게 죽을 힘을 다 짜내어 '그만 좀 하시면 안 되느냐'고 물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너는 성숙해지고, 자기는 젊어지니까 서로한테 좋은 일이다. 영화에서도 이런 일이 있지 않으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연습실에서 누가 잠깐 화장실을 가기만 해도 추행이 시작됐어요. 그래서 같이 연습하는 언니가 화장실에 가는 게 저는 제일 무섭고 겁이 났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제가. 너무 비참하더라고요." A씨는 이 대목에서 가장 많이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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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여 이런 진술을 자세히 묘사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진술은 유독 신빙성을 의심받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은밀히 저지르는 성범죄는 피해를 입증할 CCTV나 목격자 등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실은 당사자밖에 알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남녀 관계는 둘밖에 모른다'는 논리로 쉽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많은 가해자가 '당시에는 합의한 관계였으나, 변심한 상대가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류 씨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류 씨의 혐의를 처음으로 보도한 미디어오늘 기사(▶바로 가기 :유명 무용수, 26살 어린 제자 성추행해 재판)에서, 류 씨는 기자에게 “혐의는 인정하지 않지만,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라 더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 경찰 조사에서는 ‘행위는 인정하나 합의에 따른 관계였고, 피해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진술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류 씨와 통화했다는 또 다른 기사(▶바로 가기 :‘강압 아닌 합의’ 청주 출신 현대무용가 성추문에 쏠린 눈)를 보면, "행위는 인정하나 합의관계였다. 너무 과장된 부분도 있어 법적 대응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합니다.

류 씨의 진심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검찰 공소장에 적힌 것처럼 2015년 4~5월경 네 차례에 걸쳐 위력에 의해 A씨를 성추행했다는 혐의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인지, 아니면 신체 접촉은 있었지만 합의한 행위였다는 것인지, 과장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과장됐다는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출강하던 학교와 자택을 찾아갔지만 류 씨를 만날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 차례 남긴 전화와 문자에도 답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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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류 씨의 아내 이 모 교수는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교수는 A씨가 입학했던 대학의 현대무용 교수이자 학부장입니다. 2014년, 수능을 다시 봐 다른 학교로 입학하려는 A씨에게 무용단 대표이자 안무가인 자신의 남편을 소개해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 씨는 피해자가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았을 때 '네가 착각한 게 아니냐'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성추행 피해 뒤 연습실을 그만둔 피해자에게 "선생님 말대로 하면 상 받는다. 네가 한 번만 더 그렇게 네 맘대로 행동하면 다시는 (류 씨의 제자로) 안 받아줄 거다."라며 류 씨와 다시 잘 지낼 것을 종용했다는 의혹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 자택에서 나오는 이 씨에게 의혹에 대한 입장을 물었지만, 이 씨는 대답 없이 승용차에 올라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렇게 '스승'들이 답변을 피하는 동안, A씨는 여전히 우울증으로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힘들게 편입한 대학에서마저 류 씨가 전공필수 과목 강사로 임용됐을 때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온종일 집 밖에 나가지 않고, 고통을 끝낼 방법만 떠올렸습니다. A씨는 이런 고통을 겪는 피해자에게, '지난 일은 다 잊으라'거나 '그럴수록 네가 더 당당하게 그 사람들 앞에 서라'는 조언이 얼마나 무익한지 아느냐고 호소했습니다.

A씨는 류 씨 부부의 사과를 원합니다. 사과를 하고, 혐의를 인정하고, 무용단 대표와 학교 교수 등 각자 맡은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원합니다. 그저 모른 척 지나가 버리면, 자신 같은 피해자가 또 생길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스승의 권위가 절대적이라고 가르치는 무용계에서, 가르치는 이가 잘못된 행동을 해도 바로잡지 않는다면 그 밑에서 배우는 제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성장할지 뻔하다고 A씨는 말했습니다. "무용을 좋아하는 어린 후배들이 계속 그 마음을 가지고 무용할 수 있게 다들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류 씨가 정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한다는 A씨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류 씨의 형사 재판은 다음 달 17일 시작됩니다.

강푸른 기자 (strongblu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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